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 뒤에서 미국 사회는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은 새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제가 이렇게 좋은데도 왜 정치적 평가는 냉담한가. 답은 명확하다. 성장은 기록적이었지만, 그 성장이 만들어낸 삶의 질은 극히 불균등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성장률과 거리가 멀다. 주가는 올랐지만 주식을 보유하지 못한 다수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임금 상승 속도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고, 주거비·의료비·교육비는 중산층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경제는 호황이라는데 왜 나는 더 힘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 미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체감 불황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이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뉴욕에서는 공립학교 학생 7명 중 1명꼴인 약 15만4000명이 ‘집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연소득 10만 달러(약 1억4500만 원) 안팎인 맞벌이 중산층조차 월세가 소득의 절반에 이르는 주거비 부담 속에서 자녀들에게 방도 줄 수 없는 원룸 아파트에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고금리 장기화의 후유증은 이제 가계로 본격 전이되고 있다. 카드 연체율과 자동차·학자금 대출 부담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 간극이 바로 트럼프 정치의 구조적 약점이다. 그는 감세와 규제 완화, 주가 상승을 핵심 성과로 내세웠지만, 그 성과는 자산 보유층과 대기업에 집중됐다. 반면 물가와 생활비, 주거비에 직격탄을 맞은 중·하위 계층은 체감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는 더 양극화됐고 정치적 분열은 오히려 심화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다. 재정 적자 확대와 고금리, 지정학적 긴장이 겹친 상황에서 지금의 고성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성장률이 꺾이는 순간 지금 억눌려 있는 불만은 훨씬 더 거친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배울 대목은 분명하다. 고속 성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성장의 열매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함께 보지 않으면 성장 이후의 사회는 더 취약해진다. 선진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경제는 그만큼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수출 회복과 증시 반등이 이어진다고 해서 국민 다수가 체감하는 삶이 자동으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 수치에 안주하는 순간 정치와 사회는 빠르게 균열한다. 미국의 현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트럼프가 진짜로 총력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성장률이 아니라 양극화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의 화려한 고속 성장보다 그 이면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를 더 냉정하게 읽어야 한다. 성장은 출발점일 뿐이며 분배와 체감이 따라오지 않는 성장은 결국 정치적·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