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로 동반자 위상 점차 약해져
AI시대엔 어떤 자리 찾을지 궁금해

천년 왕국 신라의 유물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금관일 것이다. 화려한 금관과 영롱한 장식을 보면서 찬탄하지 않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대릉원(慶州 大陵園) 일원의 하나로, 1924년에 발굴 조사된 노동동의 금령총(金鈴塚)에서는 금관과 함께 2점의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무사가 성장을 한 채 등자(발걸이)에 발을 얹고 안장에 앉아 말고삐를 쥐고 있다. 말의 입에는 재갈을 물렸으며 몸에는 고삐·안장·다래·말띠드리개 등을 갖추고 있다.
다른 한 점은 정교함에서 크게 떨어진다. 등자도 없이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시종으로 추정된다.
말은 역사를 인간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을 사육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5500년 전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초원 어디에선가 청소년들이 과시하기 위해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 말 길들이기의 시작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 같다.
시작이 어떠하였든 인간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후 어느 시점부터인가 말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농업, 교통과 무역, 전쟁 등에서 말은 필수적이었다.
길고 긴 비단길을 오가면서 이루어진 교역이 말이 없었으면 가능했을까 싶다. 세계사에 가장 넓은 제국을 이룩한 몽골의 정복은 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말의 기동성이 이룬 상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유럽에서 말의 기동성을 전쟁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이후이다. 중세 이전에 기병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주력은 보병이었다.
그 유명한 로마군단은 보병이지 기병이 아니었다. 말은 병력의 이동에 사용되었을 뿐 정작 전장에 다다르면 말에서 내려 싸우곤 하였다. 말을 타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투를 벌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유럽에 등자가 전해진 것은 6세기 이후라고 한다. 미국 사학회 회장을 지낸 린 화이트(Lynn White, Jr.·1907~1987) 교수에 따르면 쟁기와 함께 등자는 중세 유럽의 가장 중요한 기술 진보였다.
등자의 등장으로 말 위에서 안정과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말의 용도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 이후 전쟁에서 기병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보병을 대체하고 주력부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말은 소와 같은 다른 가축에 비해 사육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
유럽의 봉건시대 영주가 가신에게 봉토를 하사하기 시작한 것은 등자가 전해지고 기병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라고 한다. 말의 사육 비용을 보조한 것이다.
등자의 등장과 말의 사용은 농업의 생산성 또한 크게 향상시켰다. 말이 농사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발굽에 장치하는 편자와 평행 마구가 이용되면서부터이다.
말발굽은 스페인의 고지대와 같이 건조한 지형에서는 쇠와 같이 단단해진다. 그러나 저지대 농지와 같이 습한 곳에서는 쉽게 부르터서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인 편자였다. 말을 농사에 사용하기 이전 소를 이용하는 경우 중(重)형 쟁기를 움직이기 위해서 적게는 4명 많게는 8명의 인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말은 힘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1~3명이면 운용할 수 있었다.
말이 인간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계가 말의 힘을 대체하면서부터이다. 15세기 이후 대포와 총이 개발되면서 기병의 효용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군대의 주력부대가 기병에서 다시 보병으로 이동한 것이 그때쯤이었다.
영국은 운하로 전 국토가 연결된 다음 18세기 중반 이후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19세기가 되면 철도가 운하를 대체하였다.
운송 혁명이 일어나면서 말은 운송수단으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농업에서도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말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승마는 중요한 종목 가운데 하나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그러나 이제 말이 없어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은 말의 역사적 역할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인공지능이 말 이후 일어난 모든 기술혁신을 대체할 기세이다. 말의 해를 맞으며 인간의 역사에서 말이 담당했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아끼는 존재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