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처음 참가해 비즈니스 전용 부스를 운영하고, 2nm(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공정을 앞세워 글로벌 고객사 확장에 나선다. 파운드리에서 2나노 시장 경쟁이 본격화하는 만큼 향후 삼성전자에게 중장기적 위협 요인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이번 CES 행사에서 파운드리 파트너십 강화와 수주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라피더스는 주로 ‘세미콘’ 등 반도체 전문 전시회에 참가하며 기술력 홍보에 집중했다. 이번에 CES를 택한 것은 본격적으로 글로벌 잠재 빅테크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후발주자임에도 글로벌 시장을 정면으로 두드리며 속도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라피더스는 2나노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일본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초미세 공정 핵심 장비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했고, 7월에는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프로토타입 제작에 성공했다. 홋카이도 치토세 공장에서 시범 라인을 가동한 지 불과 3개월 만의 성과다.
라피더스는 우선 2나노 수율(양품 비율) 개선에 집중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당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라며 “획기적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라피더스의 성과 뒤에는 든든한 일본식 ‘반도체 연합’이 있다. 최근 혼다, 캐논, 교세라 등 20곳이 넘는 기업이 신규 출자에 나섰고, 후지쓰와 소니그룹 등 기존 주주도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이로써 2025회계연도 목표였던 1300억엔 규모의 민간 자금 조달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금융권 지원도 두텁다. 일본 3대 메가뱅크와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은 출자와 별도로 2027년 이후 최대 2조엔 규모의 대출을 제공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 재건’ 기치 아래 누적 2조9000억 엔을 투입했고, 2026~2027년에 1조 엔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라피더스는 2031년까지 총 7조 엔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이 가운데 민간 출자 1조 엔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2나노 시장은 향후 파운드리 판도를 가를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만큼 라피더스의 성장세는 삼성전자엔 눈엣가시다.
삼성전자는 최근 업계 최초 2나노 GAA기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2600’ 출시를 공식화했다. 현재 대량 생산 단계로, 내년 스마트폰 신제품인 ‘갤럭시 S26 시리즈’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수주한 테슬라의 차세대 AI 반도체 ‘AI6’ 역시 2나노 공정으로 양산될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현재 2나노 시장에서 한발 앞서 치고 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일본 정부와 산업계가 총력 지원하는 라피더스의 추격 속도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