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산업 기반을 흔드는 사실상의 미래 포기 선언”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해당 개편안에는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약가 산정비율 조정(53.55%→40%대)과 주기적 약가 인하 등이 담겨있어 제약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약가 개편은 제약산업의 근간을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대위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이 참여했다.
이날 비대위는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제네릭 약가 산정비율 조정과 주기적 약가 인하로 연간 최대 3조6000억 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4.8%에 불과한 상황에서 산업 전반의 수익 구조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가 인하가 R&D 투자 위축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국내 상장 제약사의 평균 연구개발(R&D) 비중은 12% 수준으로, 혁신형 제약기업은 13%를 웃돈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가 지속될 경우 신약 개발과 파이프라인 확장, 기술수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비대위는 “기업 수익이 1% 감소할 경우 R&D 활동은 1.5% 줄어든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며 “의약품 설비 투자 역시 위축돼 산업 성장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산 의약품 공급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제네릭 의약품은 초고령 사회에서 국민 건강을 지탱하는 핵심 안전망인데, 약가 인하로 생산이 위축될 경우 공급 중단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은 약가 인하 이후 제네릭 의약품의 30% 이상이 공급 부족을 겪었다. 국내 역시 완제의약품 자급률이 2000년대 초반 80%대에서 최근 60%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취약한 원료의약품 자급 기반도 문제로 꼽혔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4년 기준 31.4%에 불과하며, 페니실린 계열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가 국내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면 의약품 공급망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약바이오기업의 수익성 감소에 따른 고용 위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대웨에 따르면 제약산업은 매출 10억 원당 고용유발계수가 4.11명으로 다른 첨단 제조업 평균보다 고용 창출 효과가 높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산업 종사자 약 12만 명 가운데 10% 이상이 감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제약산업은 연구·품질·생산 인력 중심의 고정비 구조를 갖고 있어, 비용 압박이 곧바로 고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 비중이 94.7%에 달하는 만큼, 일자리 감소는 곧 양질의 일자리 상실로 직결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비대위는 정부에 △약가 인하 정책에 대한 체계적·종합적 평가 △산업 현장의 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거버넌스 구축 △국민 건강과 산업 경쟁력을 함께 고려한 약가 정책 재설계를 촉구했다.
비대위는 “정부는 약가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시행하기보다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전제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국민 보건, 산업 성장, 재정 안정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약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