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여운 딸아이들의 투정에 못이기듯 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금새 고개를 파묻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옆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무서운 집중력이다. 늘 환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책 읽을 때나 컴퓨터 할 때 허리 펴고 턱 당기고 보세요.” 항상 환자들에게 지도하는 말의 약발이 약했음을 집에서 목도하는 순간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영상에 “척추 건강”이란 의미는 저 멀리 날아가는 한 마리 파랑새 같은 느낌이다. 안타까움과 답답함에 매몰찬 소리가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자세 바르게 하고~” 워낙에 자주 들었던 말이라 아이들은 로봇처럼 바로 허리 펴고 턱 당기고 어깨 내리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청소년기 자세 불균형(척추 부정렬)은 거의 대부분 학부모들의 고민거리다. 키가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척추 부정렬은 키성장에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키 뿐만이 아니다. 단순 국소 증상(목 통증, 저림)을 넘어 중추신경계 기능 재구성 상태에 악영향을 미친다.
소위 거북목 자세(head forward posture)는 목 뒤 근육 과긴장을 유발하고 상부 경추를 자극해 부교감신경 활성을 억제하고 교감신경 우위 상태가 만성화된다. 결과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지속시켜 수면 장애, 불안, 두통, 피로, 집중력 저하 등을 유발하며 학습효율을 저하시킨다.
그렇다면 이미 틀어진 아이들의 척추와 무너진 자율신경의 균형은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한의학에서는 이를 ‘구조와 기능의 상관관계’로 접근해 치료한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추나 요법’이다. 숙련된 한의사가 직접 뼈와 근육을 밀고 당기며 비틀어진 척추 정렬을 바로잡는 추나 요법은 단순히 굽은 등을 펴는 것을 넘어, 척추 내부를 지나는 신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상부 경추의 긴장을 해소해 뇌로 가는 혈류량을 늘리고 과항진된 교감신경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여기에 침 치료와 한약 처방이 더해지면 시너지가 난다. 뻣뻣하게 굳은 목과 어깨 주변, 척추 주변 근육을 침으로 풀어줘 통증을 없애고 경혈자극으로 자율신경의 균형을 유도한다. 그리고 아이의 체질에 맞는 한약을 통해 약해진 기혈을 보강하고 소화, 수면, 대소변 등의 신체기능을 정상화 시킨다. 특히 한의학적 치료는 성장기 아이들의 닫혀가는 성장판을 자극하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 숨어 있는 키를 찾아주는 동시에 학업 집중력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에서의 ‘생활 관리’다. 필자 역시 퇴근 후 아이들에게 “자세 똑바로 해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첫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볼 때는 반드시 거치대를 활용하게 하자. 시선이 15도만 아래로 떨어져도 목에 가해지는 하중은 12㎏에 달한다. 기기를 눈높이까지 올려 고개가 숙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거북목 예방의 첫걸음이다.
둘째, 50분 집중 후에는 반드시 10분의 ‘척추 브레이크 타임’을 갖게 하자. 아이들에게 거창한 운동을 시키려 하기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거나 벽에 등을 대고 턱을 당기는 간단한 스트레칭만으로도 척추에 쌓인 피로를 씻어낼 수 있다. 엎드려 양손으로 턱을 괴고 수 분 정도 있게 하는 것도 좋고 양손으로 뒷머리를 지지하고 턱을 뒤로 미는 ‘chin-in’운동도 거북목 방지에 도움이 된다.
셋째, 햇볕을 쬐며 걷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적절한 야외 활동은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낮 동안 세로토닌 합성을 도와 야간에 멜라토닌 전환에 도움이 돼 성장기 아이들의 깊은 잠을 유도한다. 물론 균형 잡힌 식단은 기본이다.
오늘도 거실 소파 구석에서 스마트폰 속 세상에 빠져 있을 아이들을 본다.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아이가 세상의 즐거움을 건강한 몸으로 오랫동안 누릴 수 있도록 척추라는 든든한 기둥을 세워주는 것. 그것이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필자부터 오늘 저녁엔 딸아이의 목,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가볍게 운동하며 따뜻하게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