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0시. 일본 기상청이 사상 처음으로 발표된 ‘후발 지진 주의 정보’가 해제됩니다. 하지만 그 공포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는데요. 지진 공포가 일본인들은 물론 ‘겨울 일본’을 찾으려는 관광객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죠. ‘대지진 전조’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면서 본 사회 전반에 퍼진 긴장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인데요. 주의보는 끝나지만 일본 여행을 둘러싼 불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번 사태는 8일 밤 11시 15분 시작됐는데요.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아오모리현 동쪽 앞바다에서 규모 7.5, 최대 진도 6강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도 6강은 사람이 서 있기 어려울 정도의 흔들림이 느껴지고 고정되지 않은 가구가 넘어질 수 있는 수준이죠. 실제로 이 지진은 진원지에서 약 700㎞ 떨어진 도쿄에서도 감지될 만큼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 각인된 ‘강한 흔들림’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에 충분한 규모였죠.

지진 직후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태평양 연안에는 쓰나미 경보와 주의보가 잇따라 내려졌습니다. 이후 관측된 쓰나미는 최대 70㎝ 안팎으로 확인됐고 경보는 다음 날 새벽 해제됐는데요. 인명 피해는 제한적이었지만 아오모리현을 중심으로 일부 건물 피해와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긴장감은 지속됐죠. 무엇보다 지진 발생 직후 일본 정부가 꺼내 든 조치가 상황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었는데요.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약 3시간 뒤인 9일 새벽, ‘홋카이도·산리쿠 앞바다 후발 지진 주의 정보’를 처음으로 발표했죠. 이 제도는 2022년 12월 도입됐지만 실제 발령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뒤 통계적으로 규모 8 이상 대지진 발생 가능성이 평소보다 커졌다고 판단될 경우 내리는 조처입니다. 기상청은 “반드시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향후 약 일주일간은 강한 지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죠. 경보는 아니지만, 국민과 여행객들에게는 경보에 가까운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불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강진 발생 나흘 뒤인 12일 오전 11시 44분, 같은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규모 6.7의 강한 여진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규모를 처음 6.5로 발표했다가 6.7로 상향 조정했고요. 이 여진으로 아오모리현과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키타현, 홋카이도 일부 지역에서 진도 4 수준의 흔들림이 관측됐습니다. 지진 직후 홋카이도 남부와 혼슈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는 다시 쓰나미 주의보가 내려졌고 일부 항구에서는 20㎝ 안팎의 파도가 실제로 관측됐죠.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은 규모 8급에 해당하는 후발 지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8일 지진 이후 지진 활동 영역이 동쪽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활동은 여전히 활발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이 여진을 전후로 아오모리 해역에서는 규모 5~6대의 지진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북일본 다른 지역인 노토반도 인근 이시카와현에서도 진도 4 수준의 지진이 이어졌는데요. 개별 지진을 두고 대지진과 직접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강진 이후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흔들림이 계속되는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이 커지기엔 충분했습니다.

이 같은 반응의 중심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있죠. 당시에도 대지진 발생 이틀 전 홋카이도·산리쿠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한 전례가 있는데요.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집단적 기억이 합리적 판단보다 빠르게 작동 중인 셈이죠.
거기다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대비해 온 ‘예상된 재난’ 시나리오도 불안을 키웠습니다. 일본 정부와 학계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과 수도권 직하 지진을 언젠가는 발생할 가능성이 큰 재난으로 상정해 왔죠. 난카이 해곡 대지진은 향후 30년 내 발생 확률이 70~90%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수도권 직하 지진 역시 대규모 인명 피해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재난으로 꼽히죠. 이런 공식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제 강진과 여진이 이어지자 공포는 더욱 빠르게 증폭됐습니다.
올여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예언 만화’ 논란도 다시 소환됐는데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예견했다고 알려진 만화 ‘내가 본 미래’는 올해 7월 대재앙을 언급하며 한때 큰 파문을 일으켰죠. 예언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난카이 해곡 대지진과 초대형 쓰나미 시나리오가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됐죠.

다만 공포의 크기와 실제 피해 양상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도 존재합니다. 일본 기상청 기동조사반(JMA-MOT)이 실시한 현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도 5강 이상을 기록한 관측점 전수에서 계측기 이상이나 지반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관측값은 신뢰할 수 있는 수치였지만 관측점 주변 피해는 일부 민가 외벽 균열 등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죠. 원전과 핵연료 시설에서도 이상 징후는 보고되지 않았는데요. 한국 행정안전부와 기상청 역시 이번 지진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위험 자체보다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죠. 일본 기상청과 방재 당국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예측’이 아니라 ‘대비’입니다. 일본 언론들 역시 겨울철 지진은 평소와 다른 대비가 필요하다며 방재 수칙 점검을 당부하고 있는데요.
난방 기구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에는 화재 위험이 커지는 만큼 숙소 내 난방 기구 주변에 종이나 비닐봉지, 옷, 스프레이 등 불에 타기 쉬운 물건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부터죠. 심야 시간대 대피 상황을 고려한 준비 역시 중요합니다. 일본 방재 당국은 침대 옆에 신발이나 슬리퍼를 두고, 스마트폰 배터리 소모에 대비해 별도의 손전등을 준비해 둘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요. 해안가 인근 숙소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주변 대피소와 함께 ‘쓰나미 피난 빌딩’의 위치를 사전에 확인하고 겨울철 눈이나 빙판을 고려해 대피 경로를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잇따릅니다. 대피소에서 장시간 머무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한복과 보온용품, 기본 위생용품을 준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여행객 입장에서는 “주의보가 해제됐으니 괜찮다”는 판단보다는 현지 당국의 안내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는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한데요. 이런 준비가 여행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공포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일본은 지진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나라지만, 동시에 지진에 가장 체계적으로 대비해 온 나라 중 하나인데요. 주의보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모든 일정이 위험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행 역시 불안의 영역이 아니라 판단의 영역으로 옮겨가야 하죠. 여행객이 현지의 대응 체계를 이해하고 그 흐름에 맞춰 행동할 수 있다면 불안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변수로 바뀔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