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만 해도 수요 극히 미미
AI 빚투에 채권 발행 러시
오라클·코어위브 등 두드러져

인공지능(AI) 호황이 불황으로 급변하는 위험에 대비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시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 거래가 폭증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예탁결제기관(DTCC) 집계에서 구글 모회사 알파벳ㆍ아마존ㆍ브로드컴ㆍ코어위브·메타ㆍ마이크로소프트(MS)ㆍ오라클 등 AI에 주력하는 미국 기술기업들을 기초자산으로 한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량이 9월 초 이후 약 석 달 새 약 90% 급증했다.
CDS는 기업이 디폴트에 빠지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부도 위험에 대비한 보험 수단이나 채권 가격 변동에 대한 헤지나 베팅 시 활용된다.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신용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CDS 거래량 급증은 기술기업들이 수익 창출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AI 인프라 구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서두르는 상황에 대해 투자자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잠재적인 디폴트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쇄도하는 것은 지난주 소프트웨어 그룹 오라클과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가 투자자들의 높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월가의 기술주 매도세에 다시 불이 붙은 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최근 몇 달간 기술 붐과 연관된 기업들의 주식과 채권은 실적 발표가 나올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
실제 CDS 거래 증가는 오라클과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코어위브에서 두드러졌는데, 이들 기업은 데이터센터 확보를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또 메타가 AI 프로젝트 자금 조달을 위해 10월 30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메타 CDS를 위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JP모건체이스의 투자등급 신용 전략가인 나다니엘 로젠바움은 “이번 분기 개별 기업 CDS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에서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FT는 올 초만 해도 신용등급이 높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CDS 수요는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했다고 전했다. 당시 AI 지출을 대부분 막대한 현금 보유액과 탄탄한 실적으로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급증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채권 시장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FT에 “사람들의 인식이 ‘신용 리스크가 사실상 없다’는 쪽에서 기업에 따라 어느 정도 리스크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헤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웰링턴매니지먼트의 브리즈 쿠라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바야흐로 단일 종목 CDS 전성시대”라면서 “은행과 사모펀드 투자자들의 개별 기업에 대한 위험 노출 정도가 훨씬 커졌고 이들은 보유 자산에 대한 보험을 찾고 있다”고 풀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