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구독료 등 디지털 적자 급속증가
금리·환율 동반상승 시장왜곡 우려

한국은행이 11월 기준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시장금리가 연일 오르면서 은행권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5일 기준 혼합형(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120∼6.200% 수준으로 집계됐다.
10월 말(3.690~5.832%)과 비교하면 한 달여 사이 하단 기준으로만 0.430%포인트 뛰었다. 금리 오름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금리 상단이 약 2년 만에 6%대를 다시 넘어섰고, 하단도 1년 만에 4%대로 재진입했다. 최근 빚을 낸 차주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근본 배경에는 지표금리 반등이 있다. 한은이 사실상 금리 인하 사이클 종료를 시사하자, 주담대 금리의 준거지표 역할을 하는 은행채·국고채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대출금리 상승은 우선 시장금리와 코픽스(COFIX) 금리 등 지표금리가 오른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금리는 지난달 28일 3.429%에서 이달 5일 3.452%로 일주일 만에 0.023%포인트 올랐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024년 말 2.596%에서 지난 12월 4일 3.025%로 올랐다. 국고채 5년물 금리는 2024년 말 2.762%에서 지난 12월 4일 3.229%로 올랐다. 늘어나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코픽스도 신규 취급액 기준 8월 연 2.49%에서 9월 연 2.52%, 10월 2.57%로 두 달 연속 올랐다. 그만큼 은행의 자금 확보 비용이 커졌다는 의미다.
은행들이 가산금리까지 올리면서 대출 금리 상승 폭은 더 커지고 있다. 가산금리는 은행들이 업무원가·법적비용·위험 프리미엄 등을 반영해 임의로 붙이는 금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기적인 조정 외에 최근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가산금리를 조절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금리가 오르면 환율이 하락하는 것이 과거의 관례였다. 그러나 지금은 환율도 상승하고 있다. 환율상승은 외환시장에 유입되는 달러보다 투자금 유출이 많다는 의미다. 우선 경상수지가 30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개인과 기업, 국민연금 등 경제 주체의 해외 투자는 이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입되는 달러보다 투자금 유출이 더 많아지면서 고환율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개인과 기관, 기업이 해외 투자를 통해 가지고 나가는 달러가 훨씬 많았다. 해외 주식과 채권 등 증권투자에서 내국인의 해외 투자는 172억7000만 달러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수지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 기록이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52억 달러 늘었지만 해외 유출액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업 등의 직접투자(FDI)는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18억8000만달러 늘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1억5000만달러)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증권투자 및 직접투자 등 유출된 금액을 종합하면 10월 자금 순유출 규모는 69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9월 74억9000만달러 유입에서 큰 폭의 유출로 전환됐다. 자금 유출 규모가 커지면 환율이 치솟는 현상은 연중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와 각종 클라우드 구독료, 인터넷 광고료 등으로 빠져나가는 외화가 연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AI 챗GPT, 구글 제미나이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구독료까지 포함하면 디지털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FDI) 잔액이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동시에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 이익유보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로 달러가 들어오지 않고 계속 해외로 유출되면서 원화값 추락을 막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상반기 해외로 나간 직접투자는 298억9000만 달러지만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는 130억9000만 달러에 그친다. 나간 돈이 들어온 돈보다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해외에 자회사를 세워 수익이 발생해도 국내 본사로 달러를 송금하지 않고 현지에서 보유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 이익유보금은 3분기 말 현재 1144억 달러(약 169조 원)에 이른다.
문제는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1500원 선 돌파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2009년 3월 환율이 1453원이었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12월은 1499원이었고 위기발생 후 이듬해 1월에는 1701원까지 급등했다. 지금 환율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