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싸도 팔리는 곳, 싸도 미달 나는 곳

입력 2025-12-12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

최근 부동산 기사에서는 ‘고분양가 논란’, ‘미분양 증가’, ‘청약통장 해지’와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요즘 같은 시기에도 완판 행렬이 이어지는 분양 단지들이 있다.

서울 강남은 물론이고 광명, 남양주 왕숙, 그리고 지방에서도 부산·대구와 같은 핵심지에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은 분명하다. 비싸서 안 사는 게 아니라, 비싼데도 사줄 만한 곳만 사는 것이다. 이 잔혹한 선별 과정이 청약통장 해지율을 높이고, 무주택자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분양가 대비 시세차익 매력 ‘강남권·분상제’

그러나 포기한 사람들보다 기회를 챙기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들이 보는 기준은 단 하나다. “이 분양가, 나중에 시장이 더 높은 가격으로 인정해줄 입지인가?”

고분양가 시대의 청약 성공 전략은 감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강남권·분상제·일극지.’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를 충족하는 곳만 살아남는다.

고분양가 시대에도 강남권이 안정적인 청약 수요를 유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분양가와 입주 후 시세 간의 구조적 괴리가 가장 크게 발생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강남권은 교통, 학군, 직장, 인프라, 자연환경 등 최고의 입지 조건이 중첩된 우위 속에서 신규 아파트의 프리미엄이 시장 평균을 압도한다. 따라서 분양가가 오르더라도 시장은 이를 ‘리스크’가 아닌 ‘가격의 재조정’으로 받아들이며, 결과적으로 높은 분양가조차 수요가 소화한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청약 경쟁의 양극화와 청약통장 해지율 증가로 이어진다. 4인 가족 최고 점수인 69점도 당첨이 매우 힘들고 5인 가족도 당첨을 위해 눈치 싸움을 해야 할 정도다. 점수가 높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분양가 전액에 가까운 자금을 갖춰야 한다. 그러니까 청약 스펙과 자금까지 모두 갖춘 소위 ‘있는 사람’들이 강남권 청약을 독점하면서 무주택 중·저가점층은 ‘진입불가 시장’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될 사람만 되는 시장(될놈될)”이라는 정서가 확산되고, 청약통장을 유지할 동기가 약화되며 해지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즉, 강남권은 고분양가 시대의 연료이자, 청약통장의 이탈을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지역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정책적으로 분양가가 억제되는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지역은 시세 대비 분양가가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뚜렷하며, 특히 신도시급 개발지에서는 이 ‘제도적 가격 차익’이 청약 경쟁의 핵심 요인이 된다. 과거의 1, 2기 신도시들이 그랬으며 올해부터 공급되고 있는 3기 신도시들도 이에 해당된다.

최근 예로 언급되는 왕숙 B17(공공분양)과 A24(신혼희망타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블록들은 예상되는 시세 대비 확연히 낮은 분양가로 공급되었고, 이는 단기적으로 교통, 생활 인프라가 미완성이라는 약점을 갖더라도 입주 시점에는 정상 시세 이상의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배경을 갖고 있다. 분상제가 적용되는 신도시는 ‘현재 불편함을 감수한 대가로 미래 시세 정상화의 보상을 받는 시장’이다.

이러한 지역은 무주택·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층에게는 고분양가 시대에도 유효한 마지막 가격 메리트가 된다. 단순히 저렴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가격을 반드시 재평가할 입지적·정책적 요인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청약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하기보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3기 신도시의 분양을 준비하며 때가 될 때 선택하는 결정이 필요하다.

광역권 중심축만 살아남는 ‘지방 일극지’

지방은 고분양가 시대에 더욱 극단적인 선별 시장으로 바뀌었다. 지방 전체가 청약 수요를 받는 시대는 끝났으며, 산업·행정·인구·교통이 집중된 ‘일극지(一極地)’만 수요를 흡수하는 구조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부산과 대구의 최근 사례는 이를 명확히 반증한다.

부산은 해운대·수영·동래 등 도심 핵심 축이 여전히 안정된 수요를 유지하며, 국민주택규모인 전용 84㎡가 14억 원 전후의 고분양가에도 금세 완판되었다. 이 지역들은 안정적 직주근접성과 지역 랜드마크적 요소가 아주 강한 매력으로 작용하여 예상을 훨씬 웃도는 높은 가격도 시장이 흡수한다. 올 하반기 분양했던 ‘베뉴브 해운대’, ‘써밋 리미티드 남천’, ‘르엘 리버파크 센텀’이 그 예다.

대구는 지난 5년간 공급 과잉의 조정을 거쳤음에도 최근 수성구처럼 도시의 코어 역할을 하는 지역은 신고가를 기록하면서 수요 회복이 뚜렷해지는 곳들이 보인다. 또한 창원·청주·전주 등 특례시 혹은 도청 소재지 역시 도시 기능이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유지된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도시 전체의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핵심축에 수요가 집중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당첨만 되면 오르던 분양 시장은 이미 오래전에 막을 내렸다.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해 리스크를 분산하던 시대도 정책과 제도 변화에 따라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제 시장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좋은 1채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적 압박을 만든다. 청약의 일극화와 그 정반대의 청약통장 해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도 이에 따라오는 현실이다. 정책과 제도, 부동산 흐름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고 내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최적의 한 점을 찾는 것이 아직 집을 찾고 있는 이들의 큰 숙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다 굽자→다 얼자⋯'퍼스널 컬러' 공식 뒤흔든 한마디 [솔드아웃]
  • 150조 '국민성장펀드' 출범…민관 손잡고 첨단전략산업 키운다
  • 숨 고르더니 다시 뛰었다… 규제 비웃듯 오른 아파트들
  • 연봉 2억 받으며 '혈세 관광'…나랏돈으로 즐긴 신보·예보
  • 통일교 의혹에 李 내각 첫 낙마…신속 대응에도 '후폭풍' 우려
  • 포브스 ‘세계 여성파워 100인’에 이부진·최수연 등 선정
  • 광주 공공도서관 공사장 매몰 사고…정청래, 양부남 현지 급파
  • 오늘의 상승종목

  • 12.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6,994,000
    • -0.17%
    • 이더리움
    • 4,804,000
    • -3.03%
    • 비트코인 캐시
    • 849,000
    • -0.99%
    • 리플
    • 3,018
    • -0.89%
    • 솔라나
    • 202,800
    • -0.2%
    • 에이다
    • 627
    • -7.52%
    • 트론
    • 417
    • +0%
    • 스텔라루멘
    • 365
    • -2.41%
    • 비트코인에스브이
    • 29,910
    • -0.47%
    • 체인링크
    • 20,860
    • -1.18%
    • 샌드박스
    • 205
    • -4.2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