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입력 2025-1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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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기반 사업체에 '기본정보 구독료' 지급 의무화해야

▲배수경 콘텐츠혁신부문 에디터
▲배수경 콘텐츠혁신부문 에디터
SKT·KT·LG유플러스에 이어 ‘국민 택배’라 불리는 쿠팡에서도 3000만 명의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됐다. 이름·주소만이 아니다. 구매 이력, 동선, 가족관계까지 한 사람의 ‘디지털 생애’가 통째로 복제됐다. 정부는 잇따른 사고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중심으로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실효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이 닿는 곳은 기껏해야 기업에 대한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다. 과징금은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에 납부된다. 기업의 잘못으로 사용자 정보가 침탈당했는데, 피해자는 보상 신청을 하고, 서류를 모아 제출하고, 수개월을 기다려 고작 몇 만원의 위자료를 받을 뿐이다. 그나마 신청하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기형적 구조다.

이 구조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활용해 얻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유출로 인한 피해는 개인에게 분산시키는 것. 기업은 데이터로 매출을 늘리고, 광고 단가를 올리고, 알고리즘 정밀도를 높이며 부(富)를 축적한다. 그러나 그 데이터의 출처인 개인은 대가를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이 개인정보를 위험에 빠뜨린 비용보다 개인정보를 활용해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익과 위험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한, 유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보보호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출 후 ‘사과문과 몇 만원 배상’이 더 싸게 먹히는 구조에서는 기업의 행동이 바뀔 이유가 없다.

게다가 유출이 발생하면, 기업은 “유감”을 말하고 정부는 과징금을 걷는다. 정작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우려하며 일상을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이 구조의 핵심 문제는 피해 부담은 개인에게, 비용 부담은 기업에 별로 없다는 불균형에 있다. 정보가 유출돼도 기업의 영업 구조는 흔들리지 않고, 플랫폼의 확장 전략도 변하지 않는다. 위험은 떠넘기고, 이익만 취하는 일종의 데이터 외주화가 고착화된 셈이다.

이동통신 3사, 이커머스, 포털, 카드사, 금융기관까지, 우리의 디지털 생애 전체는 이미 기업의 서버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통신사는 이동 경로와 통화 내역을, 커머스 기업은 소비 패턴을, 플랫폼 기업은 관심사와 행동 패턴까지 파악한다.

과거에는 개인정보가 부수적 참고자료였다면, 지금은 기업 가치의 중심축이 됐다. 그렇다면 데이터의 실제 소유주인 개인 역시 그 가치 사슬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업의 개인정보 사용료는 ‘0원’이었다. 기업은 약관 하나로 광범위한 사용 권한을 가져가고, 개인은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물론 기업들은 사용자들이 개인정보와 편리한 서비스를 물물교환(Barter)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데이터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수익에 비해 개인이 누리는 혜택과 서비스의 가치, 그리고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의 피해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정부는 과징금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필요하다. 하지만 과징금은 피해자가 아니라 국고로 들어간다. 기업은 “과징금을 냈으니 책임을 다했다”는 면책의 명분을 얻게 된다.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책임의 흐름만 바뀔 뿐이다.

이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데이터가 노동·토지·자본을 능가하는 생산요소가 된 시대라면, 그 자원의 원 소유자인 개인에게도 정기적이고 구조적인 보상 체계가 있어야 한다. 피해보상이라는 ‘사후 조치’가 아니라, 데이터 사용에 대한 ‘사전적 대가’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줄이는 것이 곧 비용 절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규제보다 강력한 자정 장치가 될 수 있다.

결론은 명확하다. 개인정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모든 기업은, 그 정보를 제공한 개인에게 기본 구독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국민, 혹은 회원 전체에게 지급하는 ‘데이터 기본 배당’이 제도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이것이 작금의 구독경제의 기본이 아닐까.

‘구독경제’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지불하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이 우리에게 지불해야 할 차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나의 정보 사용료는, 이제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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