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 소비가 양극화를 넘어 아예 두 개의 시장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50만 원짜리 초고가 호텔 케이크는 ‘오픈런’을 부르며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인 반면 동네 식당과 소상공인 상권은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도 한파처럼 얼어붙었다. 고가 패딩은 500만 원을 넘고 백화점은 연말 특수로 북적이지만 10만 원 이하 패딩을 내놓은 SPA(제조·유통 일괄) 매장은 생존 경쟁에 한창이다. 같은 물가 충격 앞에서도 소비 여력이 극단적으로 갈린 ‘심화된 양극화’가 올해 연말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7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올해 특급호텔들이 출시한 연말 시즌 케이크 중 최고가는 서울신라호텔의 ‘화이트 트러플(송로버섯) 케이크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로 50만 원이다. 지난해 선보인 블랙 트러플 케이크(40만 원)보다 10만 원 더 비싼데도, 하루 최대 3개만 판매하는 탓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다.
신라호텔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특급호텔들이 선보인 크리스마스 케이크 가격은 대체로 30만 원을 웃돌거나, 예년보다 비싸졌다. 대표적으로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뤼미에르 블랑슈’ 케이크(38만 원) △웨스틴조선 서울 ‘골든 머랭 트리’ 케이크(35만 원) △롯데호텔 ‘오너먼트 케이크’(30만 원) △포시즌스 호텔 ‘다이아몬드 포시즌스 리프’(30만 원) 등을 꼽을 수 있따.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등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케이크의 가격대는 3만 원대 안팎인 것과 비교하며 10배가량 비싸지만, 호텔마다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호텔업계는 특별한 케이크를 원하는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최고급 재료를 활용하고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겨울철 필수 의류인 패딩 가격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고가 패딩의 대명사인 ‘몽클레어’의 인기 제품 가격은 500만 원이 넘는다. 국내 브랜드 중 고가에 속하는 코오롱스포츠의 ‘안타티카’의 경우 여성 롱다운 정가가 지난해 99만 원에서 올해 110만 원으로 인상됐다. 노스페이스 대표 제품 ‘1996 레트로 눕시 다운 재킷’의 정가는 지난해 39만9000원에서 올해 41만9000원으로 올랐다. 패션업계에서는 패딩 가격 인상 이유로 고어텍스 원단과 지퍼 등 부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반면 SPA(제조·유통 일괄) 패션 브랜드에선 10만원 이하 패딩이 대세다. 이랜드월드가 전개하는 스파오 대표 상품 ‘베이직 푸퍼’는 작년과 같은 가격인 6만9000원에 출시됐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에잇세컨즈는 패딩 가격대를 6만 원대부터 12만 원대까지 구성, 지난해보다 소폭 인하했다. 에잇세컨즈 남성 코듀로이 푸퍼는 지난해보다 약 20% 가격을 낮췄다.
상권의 양극화도 상당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에는 소비자들이 몰리는 반면, 전통시장과 동네식당 등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기한이 11월 종료되면서 12월 연말 시즌은 소상공인들에게 더 혹독해지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2025년 10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올해 12월 전망 BSI는 83.2로 전월 대비 7.5% 하락했다. 전통시장의 12월 전망 BSI는 80.8로 전월 대비 6.4p(포인트) 하락하며 기준치(100)와 더 멀어졌다.전반적인 경기 동향을 파악하는 경기 예측 지표인 BSI는 100 이상일 경우 ‘경기 실적이 호전됐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악화했음’을 나타낸다.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은 경기 전망 악화 사유로 ‘경기 악화 요인’, ‘매출 감소 요인’ 등을 꼽았다. 하반기 소비 둔화 흐름이 이어지면서 연말에도 장사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연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