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력망 사실상 포화…데이터센터 입지까지 막히는 상황
재생에너지 확대도 ‘전기 길’ 없으면 무용…통합 전력계획 시급

인공지능(AI)·반도체가 이끄는 차세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떠받칠 전력 인프라는 이미 한계선에 근접했다. 산업계가 “전기료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과 공급의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7일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를 충당할 송전망 확충과 전력계통 안정화는 최소 5~7년이 소요돼 수요와 공급 간 간극이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력망 병목은 출력제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송전망 부족으로 발전소가 멈춰 서는 일이 반복되며 올해 상반기 육지 지역에서만 164GWh가 송전 제약으로 버려졌다. 이는 4인 가구 약 9만7600가구가 반년간 사용할 전력량에 해당한다. 전력이 남아도 ‘길이 막혀’ 소비지로 보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노출된 셈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전력 수요는 2003년 47GW에서 2023년 94GW로 98%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송전설비는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송·변전망 확충 지연도 심각하다. 제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송·변전 설비 54건 중 55%가 지연되거나 지연이 예상되는 상태다.
특히 영남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실어 나르는 핵심 송전선로는 최대 8년까지 공사가 늘어지며 단기간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 주민 수용성, 인허가·환경영향평가 지연, 부지 확보 난항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전기 길’을 좁혀 온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탓이다.
재생에너지 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해상풍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전력망에 연결할 계획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한국환경연구원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해상풍력과 전력망 법제·계획 연계 방향’에 따르면 국가 기간 전력망법·해상풍력법·분산에너지법이 따로 작동해 통합 플랜이 부재하고, 해상풍력법은 입지 중심이라 송전 부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혁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 송전망 확충, 분산에너지 활성화가 하나의 시나리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병목”이라며 “독일·영국처럼 송전망 사업자가 초기부터 참여해 입지·노선·기술기준을 통합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