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암센터 등과 함께 간질환 진단기술을 개발하며 '공공 의료기술'의 상징처럼 불려온 부산 수영구 S종합병원 간질환 전문 내과 한모 교수(65)가, 정작 퇴임 뒤에는 자신이 처방하는 비급여 약품의 납품 구조를 사적으로 설계해 거액의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공 연구기관 협업을 내세워 신뢰를 쌓아온 인물이 뒤로는 처방권을 무기 삼아 특정 업체에 유통 이익을 몰아줬다는 점에서 “의료윤리 파괴”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 교수는 2022∼2025년 국립암센터·대학병원 연구진과 함께 간질환 진단기술 다수의 특허를 공동 개발했다.
초기 간질환을 조기에 포착하는 기술도 포함돼 '공공의료 기여'의 대표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은 퇴임 후 사적 유통 구조를 정당화하는 ‘권위의 방패’가 됐다는 지적이다.
부산 지역 복수 병원에 따르면 한 교수는 자신이 처방하는 간질환 보조제 3종의 납품권을 1인 CSO(판매대행업체) '대성팜'에 집중하도록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팜은 대표 1명만 존재하는 사실상 ‘1인 회사’다. 이 대표는 한 교수가 동아대병원 재직 시절 만난 제약사 영업사원 출신으로, 수년간 교수의 일정·차량 동행을 도맡아온 ‘비선 수행’ 인물이라는 증언이 잇따른다.
한 교수는 “눈이 나빠 대리운전을 도운 적이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병원 주변에서는 “병원을 옮기면 대표도 따라 움직였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의료계는 “명목상 대표만 있을 뿐 실질 운영자가 교수 본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차명 구조의 전형적 리베이트 형태라고 지적한다.
퇴임 이후 약 3개 병원에서 이뤄진 비급여 보조제 납품 규모는 1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병원 관계자는 “납품업체 변경을 논의하자 한 교수가 '진료권 침해'라는 말까지 꺼내며 격하게 반발했다”며 “약품 대금이 일정한 경로로만 흐른다는 소문이 지역 의료계에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의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교수가 운영하는 간질환 관련 연구소에 대성팜 또는 타 의약품 업체 자금이 ‘기부금’ 형태로 흘러들어간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실질 운영자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교수는 끝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의료윤리 전문가들은 "공공 연구자의 명성과 퇴임 후 상업적 이해가 뒤섞인 전형적 ‘위장 리베이트’ 구조"라며 "퇴임 전·후의 행위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수준의 정황"이라고 비판했다. “공공 연구로 얻은 권위가 사적 이익의 도구가 된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보건당국 역시 사각지대를 인정한다. 한 관계자는 “2024년 도입된 CSO 신고제로는 1인 CSO의 차명·위장 영업을 막기 어렵다”며 “의사의 납품 개입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부산미래도시 생명포럼 김택영 회장은 "자신이 처방하는 약의 납품권을 사실상 ‘자기 회사’에 몰아주는 건 의료윤리를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퇴임 교수의 권위를 동원한 사적 이익 구조를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