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함인희의 우문현답] 초고령 사회의 그늘 ‘간병’

입력 2025-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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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가족 빈자리 어느새 간병인이 메워
노후돌봄 공적 체계 기약없는 바람
웰다잉 맞을 지혜 사회가 고민해야

1998년 스웨덴에서 나온 연구 결과다. 만일 배우자를 간병할 상황이 되면 감당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남편은 10명 중 8명이 ‘그러겠다’고 답했고 부인은 10명 중 8명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놓고, 부인의 냉정한 현실 인식과 남편의 낭만적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는 해석이 덧붙여졌다.

외환위기 직후, 집안 어르신이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하셨다. 2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가족들끼리 순번을 정해 병실을 지키며 간병을 했다. 그때만 해도 가족 간병이 간병인을 쓰는 것보다 일반적이던 시절이었다.

지난달 50대 중반의 조카가 (원인불명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응급실과 집중치료실을 거쳐 약 2주일 동안 입원을 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했다. 아들 둘을 키우던 싱글 대디가 큰아들 수능시험 바로 전날 응급실에 간 것이다. 입원 첫날 간호사가 간병인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고 했지만, 당분간 가족들이 병실을 지키면서 병세를 보고 결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4인 병실로 옮기던 날, 다행히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고, 링거 꽂은 채 조심조심 걸을 수도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되면서 간병인 없이 버텨보기로 했다. 은퇴 후 시간이 여유로워진 내가 여러 날 병실을 지키게 되었는데, 30여 년 사이 간병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병실에서 가족이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었다. 조카와 같은 병실을 쓰던 3명의 환자 모두 간병인을 고용 중이었는데, 병실을 지키는 동안 가족이 문병 온 경우를 꼭 두 차례 보았다. 그것도 주말에 아주 잠깐만. 다른 병실도 둘러보았는데 가족이 병실을 지키는 모습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가족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물론 간병인이었다. 간병인은 여성직종인 줄 알았는데, 남성 간병인도 꽤 많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남성 간병인들은 대체로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했는데, 아마도 입원실 환경이 영향을 미쳤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키가 170cm만 넘어도 잠자리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간병인 시장은 조선족이 평정했다는 소문 그대로, 병실 여기저기서 조선족 특유의 억양이 섞인 대화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간병인들이 소속 업체의 이름이 쓰인 분홍빛 혹은 보랏빛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도 달라진 풍경이었다. 예전엔 개별적으로 알음알음 간병인을 구했는데, 요즘은 간병인 파견 업체가 조직적으로 공급을 관리하고 있는 듯했다. 간병인들 사이엔 끈끈한 유대가 느껴졌는데, 탕비실에서 자신들 끼니를 해결하는 동안 알짜 정보를 활발히 소통하고 있었다.

통계청에서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설문 중, ‘부모의 노후 부양을 누가 돌봐야 하는가?’의 응답 결과를 보면, 1998년에는 자녀 86%, 스스로 11%, 정부 3%였던 것이, 2022년에는 자녀 18%, 스스로 13%, 정부 5%에 ‘가족 정부 사회가 함께’가 64%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데 가족과 정부와 사회가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는 동상이몽인 채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인 듯하다. 물론 부모를 간병할 상황이 오거나 부모의 임종이 가까워오면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두고 고향행 비행기를 탄다는 실리콘 밸리의 인도인들이 우리의 대안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간병비용을 부담하면서 소중한 가족을 간병인의 손에만 맡겨두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게다. 간병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병원 시스템도 현실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 같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낯선 고용인 곁에서 맞이해야 하는 현실 또한 방치해선 안 될 것 같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격조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은 요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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