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진압하던 소방관도 숨져
2008년 이후 17년 만에 5등급 화재 경보 발령
공사 관계자 3명, 과실 치사 혐의로 체포
“현재까지 우리 국민 피해는 없어”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52분쯤 타이포 구역의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인 ‘웡 푹 코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30층 이상 고층 8개 동으로 이뤄진 주거단지 중 7개 동에 불길이 번지며 군집 화재 양상을 보였다.
홍콩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사망자가 44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숨진 소방관 1명도 포함됐다. 중태자는 45명으로 집계됐으며 건물 내부에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27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홍콩에서 발생한 화재로는 1996년 11월 구룡 중심부의 한 상업 건물에서 41명이 숨진 사건 이후 가장 큰 참사로 지목된다. 홍콩 정부는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처음으로 최고 단계인 5등급 화재 경보를 발령했다.
현지 당국은 불길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번진 원인으로 외벽 공사에 사용된 ‘대나무 비계(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를 지목했다. 홍콩 소방당국은 “당시 강한 바람이 불면서 불이 붙은 잡동사니와 대나무 비계가 인접 동으로 날아갔고 화염이 7개 동으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일어난 단지가 4000~5000명의 주민이 사는 초밀집 건물이라는 점도 참사 규모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웡 푹 코트는 1980년대 약 2000가구 규모로 지어진 공공 아파트 단지로 장기간의 개·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건물 전면을 감싼 대나무 비계와 안전 그물망이 순식간에 불에 타면서 날아가 화염이 외벽 전체로 번졌다. 건물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아진 데다가 화재로 타버린 비계 등이 낙하하는 탓에 소방대는 진화와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나무 비계와 녹색 보호망은 전통적 중국식 건축에서 널리 쓰이는 방식이지만 안전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 당국도 3월 이미 단계적 사용 금지 방침을 내놓고 향후 공공공사의 절반 이상에서 금속 비계 사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홍콩 경찰은 “이번 사고가 시공사의 중대한 과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충분한 정황이 있다”며 “공사 관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외벽에 설치된 보호망, 방수포, 비닐 등이 방화 기준에 부합했는지를 조사할 방침이다. 또 공사용 우레탄폼이 불길 확산을 빠르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크리스 탕 홍콩 보안부 장관은 “건물 외부의 방충망, 내화 천, 플라스틱 시트가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하게 타들어가고 규정을 준수하는 자재보다 훨씬 더 빨리 퍼졌다”며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중앙(CC)TV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화재를 진화하고 사상자와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또 홍콩 지원을 위해 다른 지방 정부들도 즉각 협력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외교부는 이날 “현재까지 우리 국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지 우리 공관이 홍콩 당국과 소통하며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