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
21일 밤,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2028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진행 중인 '티나 수력발전 사업'을 지원을 위해 1년 가까이 파견 근무 중인 송길호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솔로몬SPC 차장의 숙소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빛이 사라졌다. 정전이었다. 이미 묵고 있던 호텔에서 첫 정전을 경험했음에도 아직 익숙지 않았기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버렸지만 송 차장은 초연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집에 대체발전기가 있어서 전기는 금방 들어올 거에요." 실제로 그랬다. 스마트폰을 들어 '어둠'을 찍기도 전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또 불이 꺼졌다. 정전이 몇 차례 더 반복되자 갑자기 불이 꺼져도, 하던 말을 멈추지 않을 만큼 적응이 됐다. 아니, 기자들과 함께 솔로몬제도를 처음 찾은 조원제 K-water 홍보실 차장까지 우리는 정전에도 아랑곳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심지어 송 차장은 한국에서 공수해 온, 이곳에서는 귀하디귀한 김치 캔을 따 여유롭고 능숙한 솜씨로 노릇한 김치전을 부쳐 우리에게 '하사'했다. 송 차장 숙소에 머문 시간은 100분 남짓. 정전은 여섯 번 발생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대다수 현지 주민들은 이런 정전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대체발전기가 설치된 가구가 거의 없어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달러 수준인 솔로몬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빈국에 속한다. 솔로몬전력청이 전력망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전까지는 반강제로 어둠 속에 살아야 하는 셈이다.

솔로몬제도의 일상적 정전은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도록 경제 발목을 잡는 것을 넘어 국민 생명까지 위협하는 재앙이 됐다. 불과 2년 전에는 호니아라 국립전원병원(NRH) 혈액은행이 보관하는 혈액백이 '냉장고 오작동'으로 손상 폐기됐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솔로몬제도 정부는 이 사건 이후 헌혈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잦은 정전으로 냉장고 내 음식물이 상하거나 전자제품이 고장 나는 일은 흔하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화석 연료인 경유 발전이 국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해 연료 수입 지연 등에 따른 전력 기근, 높은 전기요금의 수렁에 빠진 솔로몬제도에 티나 수력발전 사업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된 배경이다.
총사업비 2억7200만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호니아라 동남쪽 티나강 유역에 수력발전 댐과 발전소(설비용량 15MW)를 짓고 K-water가 향후 30년간 운영·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15년 국제입찰로 사업권을 확보한 K-water와 현대엔지니어링(HEC)이 함께 설립한 현지 SPC인 티나수력발전유한회사(THL)가 사업주로 참여하고 있다.

호텔까지는 송 차장이 직접 차로 바래다줬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외국인이 밤길을 아무 걱정 없이 걷기에 치안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서다. 실제로 외교부는 솔로몬제도를 여행경보 2단계 '여행자제'(국내 대도시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위험)국으로 규정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수도 한복판인 것이 무색하게 깜깜했다. 헤드라이트에 기대 천천히 움직이는 차량 앞으로 현지인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땐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길과 도로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가로등, 신호등도 없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은 THL이 입주한 건물을 포함해 단 2개뿐이다. 정전이 일상이라면 전기를 이용하는 것도 부담이다. 솔로몬제도에서는 가구가 쓸 전기도 충전식으로 미리 사서 쓴다고 한다. "현지인은 본인 휴대폰 충전할 전기를 아낄 정도로 어렵게 산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들었다.

솔로몬제도 정부는 2028년부터 첫 수력발전소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면 전기요금이 최대 40% 낮아지고 정전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현지 관계자는 "티나 프로젝트는 전력발전이고 정전은 공급 문제인데 솔로몬제도는 1차 전력공급망 자체가 불안정해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도로와 상하수도 정비 등 기반시설 투자도 급한데 녹록지 않다"고 전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소양강댐, 포항제철소 등을 지은 지도 벌써 50년이 지났다. 그때의 1년은 지금의 1년과 같지 않다. 솔로몬제도가 수력의 혜택을 보기까지 3년간 세계는 과거 20년, 30년을 뛰어넘을 속도로 변할 것이다. '성장 고속도로'에 올라탈 타이밍을 놓쳤다면 우리나라도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훨씬 더 걸렸을 것이다. 선진국과의 격차는 영원히 좁힐 수 없는 수준까지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 코가 석 자인데 호니아라에서 꽤 괜찮다는 호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켰다. 깊은 잠에 빠져들기까지 침실 조명은 시간을 두고 서너 번 더 깜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