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사가 퇴직금 제도를 운영 중이라면 먼저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를 검토해야 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은 무주택 근로자의 본인 명의 주택 구입, 근로자 본인 또는 배우자 등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으로 연간 임금총액의 12.5%를 초과하는 의료비 부담 등 일부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퇴직 전 정산을 허용한다. 원칙적으로 중간정산은 금지돼 있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제도는 어떨까. 먼저 확정기여(DC)형은 개인명의 계좌에 적립되므로 주택 구입, 장기 요양 등 법정 사유에 해당하면 중도인출이 가능하다. 수급권을 담보로 한 퇴직연금 담보대출도 허용돼 대학등록금·혼례비 등 일부 생활자금 마련도 가능하다.
반면 확정급여(DB)형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DB형은 회사가 공동기금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고 근로자가 개별 계좌를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중도인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법령상 담보 설정 규정이 있으나, 실무에서는 개인 계좌가 없어 담보대출 역시 불가하다. 퇴직 전 자금을 활용할 제도적 통로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회사 차원에서 DB형을 DC형으로 전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전환 시점까지의 퇴직급여 부채를 확정해 개인별 계좌로 이전해야 한다. 절차와 비용 부담으로 중소기업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E사의 두 직원은 현재의 재정 위기를 퇴직연금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노후소득 보장을 중시한 제도 설계의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장정화 J&L인사노무컨설팅 대표·공인노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