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호소 외면하고 ‘친노동’ 추진
무늬만 개혁으론 성장동력 못살려

이재명 정부는 정권을 잡은 지 2개월 만인 올 8월 국회에서 역대급 노동규제로 꼽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쟁의 범위 확대, 사용자성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법은 산업현장에 큰 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지만 정부와 여당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를 입법화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법은 노사갈등과 불법파업을 부추겨 기존 노사관계의 틀을 일거에 뒤엎을 ‘파업조장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반시장 정책은 노란봉투법만이 아니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위해선 주 52시간제 개편과 함께 임금체계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시급한데 이 정부는 주 4.5일제와 법정 정년 65세 등 노동계가 주장하는 경직된 노동정책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해 놓은 상태다.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와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일본 미국 대만 중국 등은 주 70시간 이상 근무도 가능하도록 유연한 근로시간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의 노동정책만 거꾸로 가고 있다.
반시장정책 기조가 잘못됐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 구조개혁을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당면한 최대 과제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것”이라며 “노동 등 6대 분야에 대해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경직된 경제시스템으로는 급격히 떨어지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어려워 개혁을 하겠다는 얘기다.
백번 옳은 말이다. 지난 16일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서도 이 대통령은 “정부는 기업인들이 경영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며 “규제 완화 또는 해제, 철폐 중에서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신속히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업의 성장동력을 높이기위해 친시장정책을 펼치겠다는 약속이다.
우리 잠재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0.9%, 내년 1.8%로 현 정부의 공약인 ‘잠재성장률 3% 회복’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대통령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1%포인트씩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곧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극복하기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위해 개혁을 하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말로만 다짐할 게 아니라 실천력을 갖고 진정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념이 밥 먹여주나”, “성장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 등 실용과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 정책은 반대로 나갔다. “언제 성장을 약속했냐”는 듯이 이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정대협의를 갖고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를 지시, 결국 입법으로 이어졌다. 경영계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따른 영향을 감안해 노란봉투법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대책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말로만 ‘먹사니즘’,‘잘사니즘’을 외쳤을 뿐이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6대 개혁 가운데에서도 경제성장과 직결되는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수 없는 핵심과제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방향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이 대통령은 “소통과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통해 ‘노동이 존중되는 진짜 성장’을 실현해 나가겠다”며 “무엇보다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강압적으로 추진한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과 다르다”고 말해 친노동 정책 추진을 암시했다. 즉, 노란봉투법 입법을 통해 노동이 존중되는 성장을 실현하고 윤석열 정부 초기 밀어붙였던 주 52시간제 개편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결국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친시장 노동정책을 외면한 채 말로만 개혁을 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잠재성장률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려면 이미 개정된 노란봉투법을 과감히 손질하고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 중인 주 4.5일제와 정년연장에 대해서도 시장 친화적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기업의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반시장적 정책을 펼치면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면 말만 앞세우는 ‘이재명식 개혁’이란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