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에게 녹록지 않은 해였다. 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 악마화'가 다시 한번 고개를 들면서 수년간 쌓아온 '기업 성장 조력자' 이미지를 잃었다. 또한, MBK파트너스에 출자했던 국민연금에 '책임론'이 번지면서 올해 PEF 위탁운용사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펀드레이징에 박차를 가하던 중견 PE들은 결성 시점을 내년으로 미루기도 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 김병주 MBK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홈플러스 공개입찰에도 인수의향자가 나타났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곳들뿐이어서 일단락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특정 PE의 경영 실패를 업계 전반의 관습으로 치부하며 업계를 뜯어고치려 하고 있다. 차입매수(LBO) 한도를 줄이고, 지분 인수 시 잔여주식을 모두 의무적으로 공매매수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또한, 운용 보고를 공모펀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내 PE들의 투자가 위축된 모습이다. 미드캡 바이아웃 소식은 간간이 들리지만 조 단위 빅딜은 외국계가 독식하고 있다. 특히 카브아웃 딜(사업부 인수)의 경우 임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적폐 세력'이 된 국내 PE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내 PE들도 지친 모습이다. 최근 한 자문사 관계자는 "국내 PE들로부터 괜찮은 일본 기업을 소개시켜달라는 요청이 잦아졌다"고 했다. 일본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후계자 부족으로 경영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곳들이 많아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PE들이 M&A에 나설 기회가 많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인구 고령화 등 상황이 비슷하지만, PE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창립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라며 크로스보더 딜을 중심으로 하려고 하는 PE들도 나오는 마당에, 남아있던 PE들도 떠날 생각 중이다.
지금까지 토종 PE가 우리나라 산업에 이바지한 점을 돌이켜봐야 할 때다. 부실 기업을 인수해 정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비효율적인 산업에 자본을 공급해 정상화를 이끌었다. 이들이 떠났을 때, 이들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