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맞물려 신뢰와 연대 붕괴
시민교육과 정치권 성찰 절실한 때

최근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혐오가 눈에 띄게 확산하고 있다. 과거 특정 지역이나 이념 집단을 향하던 증오의 언어가 이제는 국내 이주민 공동체를 향한 사회구조적 폭력으로 변모했다. 지난 10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진 ‘캄보디아 혐오’ 사태는 그 단적인 사례다. 몇몇 개인의 범죄 행위를 집단 전체의 속성으로 일반화하며, 캄보디아와 그 국민을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는 현상이 벌어졌다.
국내 캄보디아인들은 일상적 위협에 노출됐고, 캄보디아 현지 교민들 역시 계약 취소나 관광 사업 중단 등 실질적 피해를 겪었다. 혐오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경제활동을 뒤흔드는 구조적 폭력으로 진화했다. 더 넓게 보면 이런 현상은 캄보디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인, 베트남인 등 외국인을 향한 혐오가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사회의 깊은 불안과 구조적 위기를 반영한다.
외국인 혐오의 확산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경제적 위축, 사회적 불안, 정치적 선동이 맞물려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첫째, 경제 불황과 구조적 불평등이 그 토대에 놓여 있다. 일자리 부족과 생활 불안 속에서 외국인은 ‘경쟁자’로 인식된다. 특히 저숙련 이주노동자는 ‘내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로 단순화된다. 둘째, 언론과 온라인 미디어의 자극적 보도가 혐오를 부추겨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일부 언론은 사실관계보다 선정성과 감정 자극에 치중하며, 특정 사건을 ‘국가적 문제’로 일반화해 집단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한다. 셋째, 정치적 선동이 혐오를 정당화한다. 일부 정치세력은 외국인 범죄나 감염병 문제를 과장하며 ‘국가 보호’나 ‘애국’의 이름으로 혐오를 유포한다. 그 순간 구조적 문제는 감춰지고, 분노는 ‘낯선 사람’ 즉, 타자(他者)에게 전가된다.
혐오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을 외부의 타자에게 투사하며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외국인은 그 불안의 표적이 된다. 혐오의 언어는 개인의 일상에 스며들어 위계질서를 재생산하고, 사회를 더욱 파편화시킨다.
혐오는 시민적 신뢰와 사회적 연대를 붕괴시킨다.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할수록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 다양한 이주민 집단의 사회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언어와 제도적 장벽 속에 놓인 초기 이주민은 혐오의 표적이 되기 쉽다.
고용불안,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등 구조적 위기가 심화할수록 혐오는 더욱 커지고, 제도적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 혐오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주요국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인류가 함께 멈춰야 할 ‘혐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온라인 댓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은 혐오를 거부하고 연대의 언어를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외국인을 위한 선의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를 향해 혐오가 되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한 민주적 자기방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연대의 언어를 내밀어줄 수 있는 윤리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해야 할 최소한의 시민적 책임이자 우리 자신의 미래를 지키는 투자다.
나아가 혐오를 낳는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을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경제 위축과 고용불안을 타개하려는 국가 정책, 언론의 책임 강화, 시민교육과 참여의 활성화, 정치권의 자기 성찰이 그 출발점이다. 그것이야말로 혐오의 시대를 넘어 포용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