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접수 뒤엔 철회하기 힘들어
순간적 감정 아닌 신중한 결정 필요

최근 법원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사직서를 냈으니 무효라는 근로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순히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직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음은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24구합90849 판결).
화투판에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는 규칙이 있다. 일단 패를 던지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낸 사직서도 이와 같은가. 법적으로 근로자가 제출하는 사직서는 그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방적 통보인 ‘해약의 고지’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승인을 요청하는 ‘합의해지의 청약’이다. 겉보기에 비슷하다. 하지만 법적 운명은 천양지차다. 같은 사직서인데, 어떻게 다른가?
우선 ‘해약의 고지’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저 그만둡니다”라고 통보하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로 볼 것”이라고 한 바 있다(대법원 99두8657 판결). ‘해약의 고지’가 사직서의 원칙적인 형태라는 의미다.
이러한 해약의 고지는 그 통지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때에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111조 제1항). 이때 ‘도달’이란 사회통념상 상대방이 통지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상태에 놓인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08다19973 판결). 상대방이 실제로 편지를 뜯어보았는가? 내용을 꼼꼼히 읽었는가? 그런 것은 묻지 않는다. 알 수 있는 상태에 놓였다면, 알았든 몰랐든, 그것으로 끝이다.
같은 취지로, 법원은 이 ‘도달’을 비교적 넓게 본다. 서울고법은 지점장의 업무를 보좌하는 직원이 사직서를 받은 시점, 또는 늦어도 인사지원팀장이 사직서에 결재한 시점에 해약고지의 의사표시가 회사에 도달했다고 봤다(서울고법 2014누49585 판결). 비슷하게, 서울서부지법은 근로자가 경영관리팀장에게 퇴직원을 제출한 시점에 이미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고를 했다고 보았다(서울서부지법 2019가합36684 판결). 팀장에게 건넸다면 회사에 도달한 것이고, 도달하였다면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쉽게 말하자면 일단 사직서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시계는 돌아간다.
그렇다면 도달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해약고지의 의사표시가 일단 사용자에게 도달하면, 근로자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이를 철회할 수 없다(대법원 99두8657 판결). 일단 던진 패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사용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으니, 이제 와서 사용자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두 번째는 ‘합의해지의 청약’이다.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그만두고 싶으니 승인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방적 통보가 아닌, 요청이다. 이 경우 근로자의 요청만으로는 법률관계가 종료되지 않는다. 반드시 사용자의 승낙(수리)이라는 반대 의사표시가 결합하여야 한다. 양자의 의사가 합치되어야 비로소 근로관계가 종료된다. 한 손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승낙이 오기 전에는 어떻게 되는가? 민법 제527조는 “계약의 청약은 이를 철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제안한 이상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관계에서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한다. 근로자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승낙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그 청약의 의사표시를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다(대법원 91다43138 판결). 사용자로부터 승낙이 오기 전까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철회 시기를 놓쳤거나, 혹은 처음부터 사직서 자체가 무효였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 등장하는 또 다른 법리가 바로 ‘비진의 의사표시’ 주장이다. 홧김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사직서를 낸 후, 그건 내 ‘진짜 의사(眞意)’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원에서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매우 어렵다. 판례가 말하는 “진의”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이 아니라,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다면 유효하다(대법원 99다34475 판결).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근로자 스스로 이해득실을 따져 결정했다면 유효하다. 마지못해서였더라도, 여러 선택지를 저울질한 끝에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진의에 따른 선택이 된다.
사직은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중대한 법률행위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상사가 밉상인가? 회사가 답답한가? 그래도 참아라.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한번 던진 패를 주워 담을 수 없듯, 한번 낸 사직서도 무르기 어렵다. 화투판에 ‘낙장불입(落張不入)’이 있듯, 직장에도 ‘낙직불입(落職不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