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번엔 ‘희토류’와 ‘배터리’가 전면에 섰다. 희토류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 원료로 상징성이 크지만, 배터리도 실질적 전장의 중심에 놓여 있다. 두 자원은 병치되지 않는다. 희토류는 반도체로 대변되며, 배터리는 전기차와 재생 에너지 전환의 중심이었다가 이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부하 안정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전쟁의 구도는 겉보기와 다르게 희토류가 중심이 아니다.
우리 입장은 복잡하다. 고착된 국외 의존적 산업 공급망과 내수 제조 기반 약화가 겹친 결과다. 배터리와 희토류 모두 부품·소재 단계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고, 일부 장비 부문까지 그 영향이 확산됐다. 완제품 경쟁력은 높지만, 전극 전구체 등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이 절대적이다. 우리는 미국 내 생산기지의 안정성을 걱정하면서도 국내 제조 기반 강화나 리쇼어링 논의는 뒷전이다.
이번 통제는 에너지밀도 300Wh(와트시)/kg 이상의 고성능 리튬이온 전지뿐 아니라 일부 공정 기술까지 포함된 포괄적 조치다. 특히 부리튬 망간계(LMR)처럼 상용화 전 기술까지 포함된 점은, 중국이 다가올 고성능 이차전지 시장까지 선점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물론 LFP, NCM, NCA 전구체 및 음극 전구체 등 주요 전극활물질이 모두 포함됐다. 음극활물질에서도 인조 흑연과 인조·천연 흑연이 혼합된 소재가 통제 대상이다. 이미 2023년부터 일부 천연 흑연 품목이 허가제로 편입되어 있었고, 이번 조치로 관리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업계는 ‘허가제’라 당장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공급망 충격을 우려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드러낸 미국의 약점은 희토류만이 아니다. 중대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또한 미국의 취약 고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5년 1~7월 기준, 미국 전력망용 이차전지의 65%가 중국 수입에 의존하며, 중국은 전 세계 양극활물질 85%, 음극활물질 96% 정도를 장악하고 있다. 인공지능 산업의 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망 집속형 배터리(Grid-connected Batteries)는 미국의 절대적 과제가 됐다. 중국의 이번 조처는 11월 8일부터 시행되는데 강행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도, 희토류는 미국 내 일부 자급이 가능해 타격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배터리 산업은 다르다. 미국의 배터리 산업은 우리나라에 크게 의존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중국산 공급망에 닿아 있다. 이번 통제의 진짜 타격은 배터리에 있다. 최근 희토류 중심으로 미·중 갈등 봉합 움직임을 보이지만, 배터리 분야에서는 봉합의 조짐조차 없다. 희토류는 대체 공급망 논의가 가능하나, 배터리는 기술과 소재 모두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무역 전쟁의 외피를 쓴 기술 패권 경쟁이다. 미국은 인공지능 산업의 ‘반도체 칩’을 쥐고 있지만, 중국은 전력망을 강건하게 할 ‘배터리’로 목줄을 쥐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불확실한 구도 속에서 우리의 배터리 산업 강점 활용과 공급망 복원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가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