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님이 보시기에 제 인생은 어떻게 보이세요?” 그는 뜻밖의 질문에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으니, 이제 팔자 핀 거 아니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요. 저도 지금껏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았어요. 젊은 시절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환자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괴로움에도 삶을 이어 간다는 작은 차이 하나일 뿐입니다.”
치기 어린 풋내기 의사 시절, 나는 환자와 치료자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었다. 괴로움에 신음하는 환자 대 성숙한 인성과 지혜를 지닌 의사라는 도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태도로 임한 진료는 마치 열성적으로 강의하는 교사와 심드렁한 학생의 관계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나는 고통이 인간의 보편적 조건임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환자와 같은 눈높이에 선다. 때로는 의사의 권위라는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지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내 취약함을 치료의 도구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말한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는 통찰과 맥을 같이한다. 헨리 나우웬 신부 또한 치유자의 힘은 결국 자신의 상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내 상처를 드러내자, 고립되어 있던 환자의 고통이 인류 보편의 경험과 연결되고 우리 둘은 고통의 바다를 함께 건너는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환자에게 삶의 ‘정답’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 고통을 헤쳐 나갈 기술을 탐색해보도록 초대한다. 어쩌면 완치(完治)라는 환상을 버리고, 고통 속에서 삶을 항해하는 법을 함께 배우자는 초대장을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고통이라는 거대한 전쟁터에서, 우리는 이제 함께 싸우는 동지였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