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겨냥한 여당 폭주에 ‘참담’
개헌 등 자유민주주의 중지 모아야

하루가 멀다 하고 막장정치 연속극이 기록을 경신한다. 국민 모두가 자부하는 ‘K의 시대’에 정치만 낙후돼 있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하지만 폭주는 계속된다. 예상을 비웃으며 막장극 새 판이 속속 이어진다.
K-정치도 볼 만한 게 많았다. 국제사회가 상찬한 K-정치의 미덕은 반독재투쟁을 성공으로 이끈 민중의 힘, 그 성공을 탄핵 등 제도를 통해 실행한 제도의 힘, 그리고 빠른 속도로 헌정을 정상화한 회복력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지금 그 성공서사가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오염시켰다. 정치의 사법화가 결국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한다는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당은 버젓이 ‘대법관 증원 책략(court-packing)’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방안이 관철되면 현 대통령은 대법관 22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일자 여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현 정권과 차기 정권이 대법관을 균등하게 임명하는 구조’라고 강변한다. 대통령 임명 대법관 수가 균등하니 문제 없다는 전혀 핀트가 안 맞는 궁색한 변명이다.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을 사실상 억류하며 압박을 가한 것도 모자라 여당 법사위원들이 대법관 PC까지 보겠다며 대법원 청사 곳곳을 돌아다니고 대법관 집무실을 현장 점검했다. 통쾌했겠다. 법사위원장은 국감에 앞서 대법원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별 사건기록 접근 시점과 방식, 로그파일 일체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심지어 국회 법사위 여당의원들 입에서 대법관들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종이기록을 안 봤으면 무효·무죄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이 나오더니, 판검사를 겨냥한 법왜곡죄까지 만든다고 한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K-정치에 미래는 없다. 망신살만 뻗칠 뿐. 우리는 어떤 정치를 바라는가? 후세에 어떤 정치를 물려주려 하는가? 우리가 되살려 전 세계에 내세울 K-정치와 민주주의의 비전은 무엇인가?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다. 권력분립과 법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를 건전 지속가능하게 되살리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절제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상생의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해 낸다면 이 또한 이 험난한 세상을 건널 수 있게 해 줄 다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방법이 있을까?
K-정치의 비전과 진로를 찾기 위한 전국민 비상행동이 필요하다. 사회적 토론과 숙의가 필요하다. 이름난 정치원로들이 모여 우국충정을 토로하다 성명 발표하고 끝내는 식으로는 안된다. 원로들조차 갈갈이 찢겨 상극한다. 가능한 한 초당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 푸닥거리가 아니라 K-정치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니만큼 정부의 초당적 지원도 필요하다. 지원하되 간섭은 금물.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성과 양식, 존중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 성원들의 중지를 모아나가야 한다.
K-정치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전 국민 대상 서명운동 또는 국민공회, 시민의회, 만민공동회 어떤 형태로든 국민행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정 정치를 바꾸고 K-정치를 되살려야 한다. 시대정신은 비상계엄-내란 척결 못지않게 대통령-입법 장악에 따른 독재와 전횡 억제를 요구한다. 제3, 제4의 정치세력의 등장을 봉쇄해 온 정치제도, 선거법의 문제점은 그동안 보았듯이 지역과 이념 공간을 갈라 양당이 나눠 먹는 극한적 할거와 대결 구조에서는 결코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당적 제3공간을 열어 거기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국민행동이 공허한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개헌이 필요하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법치국가 구조의 본질적 요소들이 그때그때 다수의석을 장악한 정파나 대통령에 의해 정략적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헌법적 보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가의 조직, 구성의 핵심 원칙이나 기본 틀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사항은 프랑스처럼 제·개정이 일반법률보다 훨씬 어려운 ‘조직법(loi organique)’ 같은 새로운 입법방식을 도입하거나 사법권 독립 등 국가의 기본조직과 관련된 법률안의 의결정족수를 여야가 합의해야만 통과시킬 수 있는 수준, 가령 재적 3분의 2 이상으로 가중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집권세력은 지금은 승리에 도취하여 권력을 휘두르지만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기록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역사에 남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 K-정치·민주주의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한 이 엄중한 부름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