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TO가 이달 발표한 분석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내년 전망이 어둡다면서도 올해 상반기 세계 무역 활동이 급증한 것을 핵심 내용으로 적었다. 급증한 배경에 미국 관세 인상에 앞선 북미 수입 급증과 기타 지역 간 활발한 교역을 꼽았다. 그러면서 첫 번째 챕터를 상반기 성장 동력을 분석하는 데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공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관세가 확정되고 곳곳에서 관세 분쟁으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를 경고하며 국가별로 힘든 협상을 치르는 현재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적어놓은 보고서는 WTO가 얼마나 불필요한 조직인지 보여준다. 지금으로선 그저 리서치 회사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들이 공식 홈페이지에 써놨듯 국가 간 무역 규칙을 다루는 유일한 국제기구라면 예방 능력까진 없다 해도 적어도 현재 벌어진 상황을 직시하고 해법이나 대안을 강구하는 노력은 보여야 한다. 분쟁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 기구가 수년째 마비되면서 사실상 분쟁 조율조차 제대로 못 하는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기구가 작동한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WTO가 역할을 하지 못해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했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한참이다.
지난달 말 미국 관세와 관련해 답답한 마음에 WTO 관계자에게 물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이러는 건 문제 있는 게 아니냐고. 답은 예상대로였다. “우린 원칙적으로 회원국의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 조치가 제안만 한 것이든 실제 이뤄진 것이든”.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자신들이 운용하는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하라고 했다. 최종심도 못 열면서.
“이번 성과는 WTO가 우리 시대의 긴급상황에 대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6월 코로나19 의약품 접근성 향상 등을 담은 이른바 ‘제네바 패키지’ 합의 후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사무총장이 자랑하듯 한 말이다. 그에게 묻고 싶다. 지금은 긴급상황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