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목적은 정부가, 혁신은 기업이
韓 방산, ‘경직성’ 벗어나야 도약해

무기체계 개발의 첫 단추는 작전요구성능(ROC)에서 시작된다. ROC는 합동참모본부가 제시하는 작전적 요구의 명세로, 사업추진 전 과정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그러나 ROC가 지나치게 상세한 수치로 고정되면, 기업은 혁신적 연구개발(R&D)보다는 기준 충족에만 몰두하게 되고 창의성이 발휘될 공간은 사라진다. 인공지능 기반 무기체계가 등장하고 기술발전이 가속되는 지금, 정부가 세부 기준까지 일괄적으로 확정하는 관행은 사회 전체의 혁신 확산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미국은 1960년대 경직된 ROC 체계를 바탕으로 무기개발을 추진했으나, 곧 한계를 경험했다. 정부가 세부 기준까지 규정하면 기술 변화에 뒤처지고 혁신이 위축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80~1990년대에는 운용요구문서(ORD)를, 2000년대에는 합동능력통합개발체계(JCIDS)를 도입하며 제도를 진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마련된 능력개발문서(CDD)와 능력생산문서(CPD)는 미군이 ‘무기체계의 임무와 개념’만을 제시하고, 구체적 해법은 기업의 자율적 제안에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환시켰다.
다시 말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는 시장과 기업이 경쟁을 통해 찾아내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2025년 8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JCIDS의 폐지 절차가 시작되었으며, 합동군의 ‘주요 작전상 과제(KOP)’만을 제시하고 구체적 해결책 도출은 산업계의 자율과 경쟁에 맡기는 체계로 개편되고 있다.
이스라엘도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내 국방연구개발국(MaFAT)은 전체 임무와 목적만을 제시하고, 세부 기술 구현은 스타트업부터 대형 방산기업까지 다양한 주체가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게 한다. 창의적 무기체계를 상징하는 아이언돔이 불과 4년 만에 완성될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어떤 임무를 달성해야 하는가’에 집중하고, 기업과 연구팀이 기술을 창의적으로 조합하며 신속히 시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율성은 혁신을 촉진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한국은 여전히 지나치게 세부 수치까지 규정하는 ROC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 체제에서는 기업이 독창적 기술과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기 어려우며, 성능이 일부 미달하면 사업 자체가 좌초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정부는 무기체계의 임무 개념만을 제시하고, 기업은 자율적으로 제안서를 작성하여 경쟁하게 하며, 정부는 이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구조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
필자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정부와 군은 무기체계의 운영개념과 본질적 임무만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법을 고민할 수 있고 구체적 기술, 형상, 수치 등은 자율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둘째, 기업과 연구기관이 임무 완수를 위한 기술, 설계, 운영방안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창의적 대안의 경쟁이 촉진되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셋째, 평가 과정에서는 단순히 기준 충족 여부를 넘어서 제안의 창의성, 혁신성, 확장성, 실현 가능성 등 질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평가 체계는 기업이 정량적 스펙을 맞추는 수준을 넘어 미래 지향적이고 경쟁력 있는 무기를 개발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정부는 무기체계 개발의 출발점에서 ‘임무의 개념’만을 제시하고, 구체적 실현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적 제안에 맡기는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ROC는 더 이상 경직된 족쇄가 아니라 경쟁적 혁신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K-방산이 세계시장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열린 제도와 자율 경쟁의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