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K팝 시장의 타임라인은 유난히 숨 가빴습니다. 유독 도드라진 키워드는 '데뷔'였죠. 가요 기획사들이 일제히 수년간 준비해온 신인 그룹을 선보인 겁니다.
성과도 남다릅니다. 선공개곡 공개와 동시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룹이 있는가 하면, 활발한 활동으로 성장세를 증명한 그룹도 있고, 빌보드에 이름을 새긴 이들도 포착됐죠. 연말 열릴 가요 시상식, '올해의 신인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입니다.
내년 키워드는 일찌감치 '찜'돼 있습니다. 남다른 두 그룹이 '완전체'로 돌아올 예정인데요. 군백기를 끝낸 뒤 모든 멤버들이 다시 뭉칠 준비를 하거나 20주년이라는 성대한 이정표를 세우고 스포트라이트를 예열 중입니다. 방탄소년단(BTS)과 빅뱅, 두 그룹이 주인공이죠.

가요계에서 두 그룹의 위상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각각 K팝의 세대와 지형을 새로 쓴 그룹으로 평가받죠.
먼저 BTS는 2026년 봄, 7인 완전체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2022년 팀의 맏형 진의 입대를 시작으로 제이홉, 슈가, RM, 뷔, 지민, 정국이 차례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잠시 팬들의 곁을 떠났는데요. 6월 슈가의 소집 해제를 끝으로 군백기(군대+공백기) 종료를 선언했죠.
BTS는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출국해 송캠프를 꾸렸습니다. 내년 봄 발매할 새 앨범 작업을 위해서였는데요. 이들은 신보 발매와 함께 대규모 월드투어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BTS의 완전체 신곡은 2023년 발매된 데뷔 10주년 기념 싱글 '테이크 투(Take Two)' 이후 약 3년 만이 될 예정입니다. 앨범 단위로는 라이브 실황 앨범을 제외하고 2022년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Proof)’ 이후 4년 만이고, 정규 단위로는 2020년 '맵 오브 더 소울 : 7(MAP OF THE SOUL : 7)' 이후 6년 만이죠.
투어 역시 오랜만입니다. BTS의 마지막 대규모 완전체 공연은 2021년 11월~2022년 4월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BTS 퍼미션 투 댄스 스테이지(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이후 4년 만입니다. 3개 도시에서 총 11회 열린 오프라인 공연에는 46만 명 가량의 팬들이 모였고요. 대면 공연을 비롯해 온라인 공연, 라이브 행사까지 모두 합치면 누적 관객 수는 400만 명을 넘어선 바 있죠.
그런가 하면 빅뱅은 20주년을 맞아 완전체 컴백에 나섭니다. 시작도 남다른데요. 미국 최대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이하 코첼라)'에서 완전체 무대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빅뱅은 2020년 한국 보이그룹 최초로 '코첼라'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행사 자체가 취소되면서 아쉬움을 남긴 바 있습니다. 6년 만에 밟는 코첼라 무대를 통해 완전체로 뭉칠 예정인데요. 특히 2026년은 2006년 데뷔한 빅뱅이 데뷔 20주년을 맞는 해인 데다가, 빅뱅 전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도 그룹명 사용을 승인하는 등 코첼라 무대에 힘을 보태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목되는 건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코첼라 출격은 시작이라는 건데요. 지드래곤과 태양, 대성은 20주년 활동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면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지드래곤은 3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에서 "우리(빅뱅)가 스무 살이 된다. 아직 어리다. 스무 살 되면 성인식을 해야 되니까 섹시한 성인식을 구상 중"이라고 밝힌 바 있고요. 대성은 8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내년에 20살이 되는 빅뱅의 성인식을 지금 저희도 차근차근 잘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들을 하나하나 얘기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잘 준비해서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드리겠다"고 예고했죠.
지난해 지드래곤의 솔로곡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을 통해 빅뱅이 완전체로 모이긴 했으나,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신곡이 발표된 건 2022년 '봄여름가을겨울'이 마지막입니다. 완전체 투어까지 진행된다면, 전 멤버인 탑 입대 전 개최한 10주년 기념 아시아 투어 '빅뱅10 더 콘서트 : 0 투 10 파이널 인 서울(BIGBANG10 THE CONCERT : 0. TO. 10 FINAL IN SEOUL)' 이후 무려 9년 만이 되죠.
2016년 막을 내린 '메이드 월드투어(MADE WORLD TOUR)'로는 150만 명, 2017년 끝난 '빅뱅10 더 콘서트 : 0 투 10'으로는 11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빅뱅인 만큼, 이번 대규모 공연 개최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두 그룹의 완전체 소식은 팬덤만 움직이게 한 게 아닙니다. 주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하이브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4.22% 오른 28만400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12만9700원(2.69%), YG엔터테인먼트는 10만5500원(5.92%), JYP엔터테인먼트는 7만7000원(2.53%)에 각각 장을 마쳤습니다.
앞서 엔터주는 한한령 해제 기대감에 상승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지난달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다는 소식에 이들 종목이 주목받았는데요. 한한령 해제로 K팝의 중국 내 영향력 확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 영향이었죠.
다만 늘 그렇듯(?) 이 기대감은 금세 엎어졌습니다. 올해 적지 않은 K팝 그룹이 중국에서 콘서트, 페스티벌, 전시회 등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한령 해제도 시간 문제'라는 기대를 키운 바 있으나, 대다수 일정이 개최를 앞두고 무기한 연기 혹은 취소되길 반복한 겁니다. 지난달에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릴 예정이던 걸그룹 케플러의 팬 콘서트가 보름을 앞두고 돌연 연기됐죠. 현지 시장 활동 불확실성이 재차 부각되면서 엔터주 역시 상승세를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3일에는 약세장에서 오히려 상승 폭을 키우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다가오는 데 더해 중장기 성장 동력이 조명받으면서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시장에서는 BTS와 빅뱅이 엔터주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두 그룹이 동시에 활동을 시작하면 2026년은 K팝 산업의 정점을 찍는 해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10일 보고서를 내고 2026년 엔터 업종이 역대급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이 연구원은 "BTS의 컴백 및 투어 발표, 빅뱅의 컴백 가능성, 그리고 지속된 실적 모멘텀이 모두 확인될 10~11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가 오래도록 기다려 온 컨빅션 비중확대 구간"이라고 짚었습니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3일 "한중 관계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업종이 단기적으로 조정 국면을 거쳤지만 구조적 실적 성장세에 중장기 성장 동력까지 산업 펀더멘털은 여전히 안정적"이라며 "3분기 실적에서 두드러질 규모의 경제 효과는 업종 전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 핵심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등은 시간 문제"라고 분석했죠.
박수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브의 3분기 실적이 신규 아티스트 데뷔 프로젝트 등 투자성 경비 집행으로 시장의 기대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글로벌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KATSEYE)의 성공적인 안착과 2026년 BTS의 완전체 컴백이라는 강력한 모멘텀을 고려할 때 "강력한 실적 레버리지가 기대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K컬처를 언급하면서 상승세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인데요.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21세기 국제사회에서는 문화가 국력의 핵심"이라며 문화산업을 국가경쟁력을 이끌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문화콘텐츠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세제·규제 혁신과 인프라 확충을 병행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두 그룹의 귀환은 팬덤을 위한 컴백 이벤트를 넘어 산업의 체력을 증명하는 상징으로도 읽힙니다. 팬덤의 결집은 곧 소비로, 소비는 주가와 실적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왔죠.
한한령 이후 미국·유럽·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 개척에 집중하며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강화해온 K팝 시장은 또 한 번의 확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물론 증시가 기대감으로 들썩인다고 해서 늘 결과까지 장밋빛인 건 아닙니다. K팝 산업은 여전히 외교 변수, 글로벌 시장의 흐름, 팬덤의 반응에 따라 출렁이니까요. 다만 군백기를 마친 BTS와 20주년을 맞는 빅뱅, 두 그룹이 그리는 '완전체의 해'는 단순한 컴백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방향을 바꿔놓을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투자자들은 그래프를 보고, 팬들은 티켓팅을 기다리지만 결국 모두 '복귀'라는 같은 기대를 품고 있죠. 2026년, 그들이 다시 함께 서는 순간 K팝 시장이 또 한 번 요동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