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등 우주 인프라 민간이 주도해
‘民軍융합 안보전략’ 도입 서둘러야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상업우주’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기술적 혁신은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상업우주의 발전은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21세기 안보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위성, 발사체, 통신망 등 우주 인프라를 정부와 군이 독점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 기술이 그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통신망이 마비되었을 때, 민간 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망은 우크라이나군의 실시간 지휘·통제체계를 가능하게 했다. 이는 상업우주 인프라가 단순한 민간 기술지원을 넘어 실제 전쟁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업우주기술이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용 및 시간의 효율성이다. 과거 군사위성은 개발에 수년이 걸리고 수천억 원이 투입됐다. 반면 민간 발사체와 소형위성은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발사 및 배치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맞춤형 시스템 개발에 비해 민간업체가 이미 시장 경쟁을 통해 개발한 위성, 발사체, 통신망 등을 구매 또는 임차함으로써 투자비용과 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둘째, 복원력 확보다. 적의 공격으로 군사위성이 파괴되더라도 상업위성망이 예비 네트워크로 기능하면 지휘체계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미 우주군은 이를 위해 상업·군사위성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우주 아키텍처’를 추진 중이다. 전시에도 단절 없는 통신·정찰 네트워크를 민간 인프라로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셋째, 기술 혁신 지속성이다. 군사위성은 개발 주기가 길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상업우주는 시장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한다. 재사용 로켓, 소형 발사체, 군집위성 등은 모두 민간이 먼저 성공시킨 기술이다. 정부가 이 흐름을 적극 수용하면 국방우주기술의 발전 속도는 비약적으로 증진될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상업우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24년 ‘상업우주 통합전략’을 발표하며 상업우주 역량을 국방우주 아키텍처의 한 축으로 공식 편입했다. 이러한 전략은 상업우주기업을 단순한 보조 역할이 아니라 군사 아키텍처 내 필수 요소로 만드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유럽 역시 상업위성 데이터를 나토(NATO) 감시체계에 도입하는 등 민·군 융합형 안보전략을 추진 중이다.
상업적 역량이 유용하고 군사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지만 군사적 요구는 특수하며 상업적 해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기상위성은 이 범주에 속한다. 미 우주군은 전 세계 군 사용자들에게 기상 데이터를 제공하는 노후화된 국방기상위성프로그램(DMSP)의 종료를 검토하고 있다. DMSP가 없다면 군은 전자광학기상시스템(EWS)과 기상시스템 후속 마이크로파(WSF-M)와 같은 기존 미군 프로그램을 포함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해법을 상용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군 사용자들은 데이터를 상용서비스와 결합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군은 분쟁 발생 시 이러한 기능에 대한 안전한 접근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상업우주의 군사적 활용에는 보안 및 기밀성 문제, 적의 공격 위험, 의존성, 기술 적합성 및 공급망 리스크 등의 한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기술 통합과 법·제도 정비로 충분히 완화가 가능하다. 오히려 상업우주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않는다면 미래 안보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성이 더 크다.
우주는 이제 경제와 안보가 교차하는 전략적 공간이다. 민간의 혁신을 단순히 산업적 성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기반으로 바라봐야 한다. 상업우주산업의 발전은 국방우주 역량을 보다 빠르고 유연하며 비용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미래 안보의 핵심 가속기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업 주도의 우주산업 역량을 국방과 연계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상업우주산업을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닌 국가안보 인프라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우리 군의 우주작전 역량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민간의 혁신과 국가의 안보 전략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더 강력하고 유연한 우주안보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