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의료, 보건, 경제를 교차 연구하는 김현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이 주제로 연구한 논문 내용을 봤다. 내 ‘느낌적 느낌’은 현실이었다. 김 교수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전 국민 건강보험 데이터를 통해 자녀의 암 진단이 부모 소득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추적 분석했다.
엄마가 더 많이 일을 그만두는 게 현실이었다. 진단 직후 어머니 고용률이 10% 포인트 낮아졌다. 소아암 사망률은 3년 이내 15% 수준이었다. 즉 85%의 아이들이 3년 이후에도 살아남지만 소아암 간병을 위해 엄마가 일을 그만둔 가정의 소득 감소는 더 오래 지속됐다. 엄마가 아빠보다 소득이 높아도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둘 가능성은 엄마가 더 높았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확률은 아빠 엄마 모두에게서 크게 늘었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의료비 부담은 덜어주지만, 돌봄으로 인한 경제적·정신적 부담까지는 막지 못했다.” 실제로 소아암 병동에서의 내 경험상 의사·간호사가 있지만 소아암 특성상 간병하는 부모가 복약, 상처관리 등의 간병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여성)가 불균형하게 더 독박 돌봄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그렇다면 ‘돌봄 독박’ 대신 ‘돌봄 나눔’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가 ‘돌봄 나눔’의 산물이다. 19년 전 나는 소아암에 걸린 아이를 6개월 동안 간병하면서 회사를 그만둘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당시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다. 첫째, 남편이 당시에 매우 드물게 진짜 남성 육아휴직을 했다. 둘째, 돌봄이 가능한 사람을 따로 고용했다. 셋째로 당시 다니던 회사가 예외적으로 매우 너그러웠다. 당시 회사는 안식휴가를 당겨서 쓸 수 있게 해주는 등 여러 편의를 봐 줬다.
소아암 간병은 엄마들의 죄책감이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간병하며 주변에 기댈 사람 없는 구조, 간병을 여성 몫으로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여성 스스로 간병 역할에 갇히는 심리적 요소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나에겐 주변에서 그 고리를 깰 수 있었던 물리적 지원과 심리적 지지가 모두 있었다. 가장 큰 요소는 스스로 ‘아픈 애는 엄마가 봐야지’란 심리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었던 데 있다. 엄마가 있다고 꼭 아이가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휴직을 마치고 출근한 첫날, 아이의 항암치료 후유증이 회복되기 시작된 걸 봤을 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소아암 간병뿐만이 아니다. 영케어러들의 아픈 부모 돌봄, 장애 자녀 돌봄 등 이슈엔 여성 돌봄을 당연시하는 심리가 상존한다. 아이의 항암치료 과정 동안 개인-회사-사회가 조금씩 간병 부담을 나누어 진 경험을 통해, 육아를 포함한 돌봄은 개인의 경험이 아닌 사회적 경험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이때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당시 회사에 20년 넘게 장기근속할 수도 없었고 지금 운영 중인 장애 접근권과 이동권을 향상하는 조직인 무의도 없었을 터다.
돌봄 부담을 나눠서 지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것 외에도 뿌리깊은 ‘여성이 돌봐야 한다’는 인식을 타파해야 한다. “애는 엄마가 봐야지”라는 무심한 말은 엄마들에게 엄청나게 무겁게 다가온다. 다니는 직장에서 예기치 않은 불행에 직면한 직원에게 ‘당신의 커리어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가족이 처한 불행과 돌봄 부담을 사회가 나누어 지면 결국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가 더 활발해져 국가의 돌봄 정책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