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업계에 ‘슈퍼사이클(초호황)’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축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전력반도체(SiC·GaN)를 중심으로 한 수요 확산이 맞물리면서, 2026년 이후에도 장기 상승 사이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픈AI의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에 전략적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HBM 시장의 판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오픈AI는 2029년까지 미국 내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20곳을 건설할 예정이며, HBM을 포함한 고성능 D램 생산능력의 두 배가 넘는 월 90만 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26년부터 HBM 수요처는 엔비디아 중심에서 미국 빅테크 업체로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 HBM 경쟁 심화에 따른 가격 하락 우려는 기우에 그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1C 나노 DRAM과 4나노 로직 다이를 채택한 HBM4 개발에서 초기 수율이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발열 문제 재발 여부가 변수로 꼽힌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2026년 HBM3E 12단 제품의 평균판매단가(ASP)가 전년 대비 30%대 중후반 하락하더라도, HBM4의 가격 프리미엄이 60%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HBM 고객사도 6개로 확대됐으며, 대부분 2026년 HBM3E 가격 계약을 이미 마친 상태다.
AI 슈퍼사이클의 또 다른 축은 전력반도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성 확보, 전기차 보급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3대 구조적 흐름이 맞물리면서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 기반 전력반도체의 시장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AI 서버의 경우 칩 성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전력 소모량이 폭증해 전력 변환 과정에서의 손실 최소화가 필수 과제로 부상했다. 전력반도체는 이러한 전력 효율 개선의 핵심 기술로 꼽히며, 글로벌 소재·장비 업체들의 선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도 장기 수요를 뒷받침한다.
HBM 외 범용 메모리(D램, NAND) 시장도 동반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공급자 평균 DRAM 재고는 3.3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2주, 삼성전자는 6주 수준이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북미 클라우드 사업자(CSP)들의 서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중국 CSP들의 ASIC 도입도 본격화되면서 4분기에도 재고가 추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세를 감안해 4분기 고객사 계약을 늦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D램 수요 증가율은 17%로 생산 증가율(15%)을 웃돌 전망이다.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NAND 시장도 회복세다. NAND 업체들의 감산과 고용량 HDD 공급 부족이 겹치면서 서버용 eSSD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2026년 NAND 수요 증가율을 13.8%, 생산 증가율을 14.0%로 전망하며 업황이 양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도 동반 수혜가 기대된다. 투자자들은 업황 회복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소외주나 신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HPSP, 넥스틴, 파크시스템스 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HBM 확대와 전공정 투자 확대에 대응한 검사·계측 장비업체의 실적 상향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