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세제·금융지원 뒷받침하나 업계는 “역부족”
기업 인센티브 넘어 전력 인프라·비자 등 구조적 지원 필요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보조금 전쟁’을 통한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그러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간접 지원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인센티브만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지탱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멈추면서 배터리 업계에 불똥이 튀지 않을지 우려가 커진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배터리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각종 금융·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지원, 공급망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며 1000조 원 이상의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전기차 시장에는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며 전·후방 산업을 아우르는 전방위 지원을 폈다.

정부의 직접보조금 규모도 상당하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CATL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정부로부터 150억8600만 위안(약 2조8663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BYD는 전기차 보조금을 제외하고도 135억3600만 위안(약 2조5718억 원)을 지원받았다. 그 결과 CATL과 BYD는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점유율 1·2위를 유지하며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적극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소비자에게는 최대 7500달러의 구매 세액공제를,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에는 현금화 가능한 생산 세액공제(AMPC)를 제공한다. 올 초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OBBBA(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서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조기 폐지됐지만 AMPC는 사실상 유지됐다. EU는 6월 기존의 ‘임시 위기·전환 프레임워크(TCTF)’를 대체하는 ‘청정산업 국가보조금 프레임워크(CISAF)’를 마련해 공공 보조금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도 배터리 정책펀드와 금융지원 패키지, 투자세액공제, 기술 개발 R&D 투자 등을 통해 산업 경쟁력에 힘을 싣고 있지만 주요국과 비교하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직접환급제’ 도입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행 제도는 법인세 감면 방식이라 적자 기업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수 유출 우려 등으로 논의는 2년 넘게 답보 상태다. 기업들은 전기차 수요 침체와 재무 부담이 겹친 상황에서 즉시 도움이 되는 현금성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사이 중국 기업들은 ‘저가 공세’에서 ‘기술 공세’로 전략을 넓히며 국내 배터리 업계를 벼랑 끝까지 내몰고 있다. CATL은 지난해 R&D 비용으로 186억7000만 위안(약 3조5000억 원)을 투입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연구 인력도 2만 명을 넘겼다. 전 세계 특허 출원 건수도 4만4000여 건에 달한다.
물론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3사도 R&D 비중이 작지 않은 편이지만,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과 비교하면 절댓값에서 격차가 크다. 지난해 기준 3사의 평균 R&D 금액은 8876억 원, 연구 인력은 3000여 명에 그쳤다.
기업 지원만으로는 배터리 산업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이 해외 생산을 늘릴수록 비자나 인허가 문제 등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리스크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 정책 불확실성이 크고, 정부 지원은 중국에 비해 부족해 국내 기업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면서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생산 인센티브를 넘어 인프라·제도 전반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