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감원장 '구원투수' 평가 속 내부 결속력 강화
금융권 "소비자보호 명분, 규제 강화로 이어질 것" 우려

금융당국이 해체와 분리라는 벼랑 끝을 가까스로 비켜섰다. 그러나 안도감은 잠시일 뿐 당국의 앞길에는 소비자 보호 성과 압박과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이라는 두 갈래 과제가 남아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조직개편 파동에도 불구하고 금융정책 기능을 지켜내며 정책 주도권을 확보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기능을 가져갔지만 금융정책에는 손을 대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위의 존재감은 오히려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는 당장 현 정부의 핵심 기조인 '생산적 금융' 추진을 비롯해 가계부채 관리, 주택시장 안정 대책, 석유·화학 업종 구조조정 등 민감한 현안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금융위에 힘을 실어주며 "주요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이제는 가시적 성과로 조직 존립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금감원은 금소원 분리라는 1차 고비를 넘겼지만 공공기관 지정이라는 더 큰 숙제가 남았다. 26일 오전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설명회를 열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윤태완 비대위원장은 "금소원 신설 저지는 의미 있는 성과"라며 "이제 공공기관 지정 문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1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최종 결정 전까지 금감원이 금융소비자를 위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며 "소비자 보호 혁신을 통해 지정 논란도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이번 사태가 조직 결속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윤 위원장은 "처음엔 이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합된 목소리로 모였다"며 "앞으로 업무를 할 때에도 부서 간 칸막이를 줄이고 협업을 강화해 시너지를 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애초 국회 본회의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상정되는 25일을 끝으로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던 비대위는 30일께 대의원 64명이 모여 향후 활동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내부에서는 "공공기관 지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비대위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
금소원 분리안 철회 이후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찬진 원장을 '구원투수'로 보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원장이 직원들과 함께 싸워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체대화방에서는 미국 출장에서 귀국하는 원장의 출근길을 환영하자는 의견까지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다. 조직개편안이 공개된 직후 전 직원 긴급 설명회에서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며 정부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반감을 샀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9일 출근길 '검은 옷 시위' 첫날 1층 로비로 내려와 직원들과 직접 대면한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한 금감원 직원은 "당시 원장이 직원들과 연이어 간담회를 가지며 목소리를 경청했다"며 "그 과정이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번 사태가 '금융당국의 힘겨루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소비자 보호를 둘러싼 당국의 드라이브가 금융회사들을 정면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살아남은 근거를 '소비자 보호'에서 찾아야 하는 만큼, 감독과 규제가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이어지는 대형 해킹 사고나 불완전판매 논란이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