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을 고칠 줄 알지만, 돈 없는 사람은 못 도와준다. 보건의료 산업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초심자에게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공식은 바로 생명윤리 더하기(+) 자본주의다. 가난하면 방치되거나, 지름길을 알아도 더 아프고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기업의 신약 개발 동인이 돈이라는 사실이 워낙 자명해서,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불편한 세태다.
비만은 어느 질병보다 단연 사회적인 영향이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소득 하위 20%의 비만 유병률은 40.3%로 상위 20%의 32.8%보다 7.5%p 높았다. 2023년 기준 초등학생의 과체중 및 비만율은 읍·면 지역이 도시보다 5.7p% 높았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비도심 주민은 비만해지기 쉽다는 의미다. 운동과 식단관리에 투자할 여유가 없는 환경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위고비의 등장으로 비만을 둘러싼 아이러니는 한층 심화했다. 도심 속 부자들의 귀족적인 다이어트가 연일 화제다. 돈과 시간이 충분한 유명인들은 개인 운동지도, 전문가가 설계한 식단을 따르며 경우에 따라 약물의 도움까지 받는다. 성공적으로 체중을 줄인 연예인들이 SNS를 통해 ‘위고비 안 했다’라며 노력의 순수성을 해명하는 기묘한 상황도 반복됐다. 대다수는 위고비가 필요한 의학적 기준인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에 못 미치는 이들이었다.
‘위고비 맞은 셈 치고 굶어라’라는 농담을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비만의 사회적 타격이 크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2021년을 기점으로 15조6382억 원을 넘어, 음주(14조6274억 원)와 흡연(11조4206억 원)보다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 환자가 받는 비만대사수술 이외에 비만 예방과 치료는 모두 건강보험 비급여·미용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비만 관리 정책을 위한 재원이나 법률도 없다.
무엇보다 사람의 몸은 자본주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돈이 없어 건강이 박탈되는 현상은 테슬라를 구경하며 마을버스를 타거나, 미슐랭 식당 앞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수준의 박탈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만에 맞설 수단은 가장 필요한 이들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