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폭스바겐보다 가격 경쟁력 떨어져
현대차·기아, 2분기 약 1조6000억 손실

한·미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 정부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7.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관세가 인하된 상황 속에서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으며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현지 주력 차종들이 경쟁사들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가격 인상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최대 판매처인 미국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관세 부담을 모조리 떠안으면서 수익성 악화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25일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유럽산 자동차와 관련 부품에 대한 관세를 8월 1일부로 소급 적용해 현 27.5%에서 15%로 낮추기로 확정했다. 이번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연합(EU)이 7월 21일 발표한 무역 합의 공동성명에 따른 후속 조치로, 약 2개월 만에 공식적인 발효가 이뤄졌다.
이번 조치로 유럽산 자동차가 15% 관세를 적용받게 되면서 현재 자동차 관세율 25%를 적용받는 한국으로선 가격 경쟁력에 뒤처질 위기에 놓였다. 앞서 일본이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확정한 데 이어 유럽까지 더해지며 경쟁사들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는 7월 말 관세 협상 타결로 자동차·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줄이기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실무 투자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시행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에서 가격 역전 현상을 마주하게 됐다. 한국산 자동차는 일본산과 유럽산에 비해 낮은 가격을 앞세워 경쟁해왔는데, 관세가 적용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미국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서 현대차 투싼 2026년형이 2만9200달러, 폭스바겐 티구안은 3만245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관세율을 적용하면 티구안은 투싼보다 더 저렴해지게 된다. 도요타그룹의 경우 현재 관세 기준(한국 25%·일본 15%)으로 단순 계산하면 쏘나타는 3만3625달러로 캠리(3만2660달러)보다 비싸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관세 부담분을 반영한 가격 인상은 자제하겠다는 방침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2025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지금 가격을 올리면 시장에서 실기(失期)로 이어진다”며 “미국 시장을 포기하면 비즈니스 전체를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최고의 상품과 퀄리티를 내는 게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대차·기아가 2분기에만 약 1조6000억 원의 영업이익이 줄어든 만큼,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정부가 서둘러 미국과 협상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추가 논의를 진행한 점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15% 인하가 조속히 적용되지 않는다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점유율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