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운용 '박현주 펀드' 등 대중화
정부 주도, 공·사모펀드와 운용 차이

펀드는 본래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집합투자기구를 뜻한다. 투자자는 지분 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으며, 위험을 분산하고 전문 운용사를 지정해 전문 투자자의 역량을 활용한다. 자본시장법상 펀드는 모집 방식에 따라 공모 펀드와 사모 펀드로 나뉜다. 여기에 창업·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한 모태펀드, 특정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형 펀드 등 다양한 유형으로 확장됐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펀드의 기원은 18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신탁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발전한 ‘뮤추얼 펀드(회사형 투자신탁)’는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주식·채권에 분산 투자하는 구조로, 오늘날 펀드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증권투자신탁제도가 도입되면서 펀드 개념이 첫발을 내디뎠다.
IMF 외환위기 직후 제정된 증권투자회사법은 본격적으로 미국식 뮤추얼펀드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자본시장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정비됐다. 이 과정을 거쳐 공·사모펀드 제도가 본격화되며 국내 펀드 시장은 외형과 제도를 동시에 갖추고, 개인·기관·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투자 수단이 됐다.
한국 펀드 시장의 성장은 벤처 붐과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있다. 2000년대 벤처 열풍 속에서 모태펀드가 조성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자금이 공급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관과 개인 모두 안정적 투자처를 찾으면서 펀드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 시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박현주 펀드’가 대표적인 간판 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개인 투자자에게 펀드를 대중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쳐 펀드는 단순한 금융투자상품을 넘어 기업과 산업의 자금조달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펀드의 장점은 분명하다. 투자 위험을 분산하고, 개별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산업·해외 자산에까지 투자할 수 있다. 대규모 자금을 모아 성장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수행하며, 자본시장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높은 수수료, 투자 구조의 불투명성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특히 시장 침체기에는 운용 성과 부진이 겹치며 투자자 불만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처럼 자본시장에서 출발한 펀드는 최근 들어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단순한 투자 상품의 범주를 넘어, 외교 협상과 국가 산업 전략 등 전혀 다른 영역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거나, 인공지능(AI)·수소 경제 같은 첨단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정책 펀드가 추진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흐름에 발맞춘 사회적 펀드가 확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정부는 펀드를 정책적 무기로 활용한다. 이같이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 펀드는 ‘펀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 공·사모펀드와는 제도적 구조부터 운용 방식까지 전혀 다르다. 정책 목적이 강하다 보니 단순한 ‘정책 이벤트’에 머무르며, 투자 상품과 정책 도구 사이에서 애매하다는 혼선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은 펀드 본래의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우려를 키운다. 정부 주도 펀드의 성과가 미흡했을 때, 책임이 재정을 집행한 정부에 있는지, 자금을 운용한 금융기관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자금을 강제로 동원한 기업이나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효율성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선 결정에 참여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