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이 삐뚤어진다더니 ‘독함’을 장착하고 찾아온 가을 모기. 이제는 어느덧 여름 모기는 사라지고 가을 모기가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죠.
이는 단순한 느낌만이 아닌데요. 올여름은 유난히 모기가 잠잠했습니다. 서울은 8월 내내 모기활동지수가 40 아래로 머물렀고 대구 역시 지난해의 절반도 되지 않는 모기 개체 수가 채집됐죠. 한여름이 모기의 계절이라던 오래된 통념은 이제 더는 맞지 않는 걸까요? 폭염과 폭우가 잦아지면서 여름 모기는 숨죽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 ‘가을 모기’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서울시 모기활동지수는 6일 50.5를 기록하며 40일 만에 ‘주의’ 단계로 올랐습니다. 수변 지역의 모기 지수는 9월 초순 들어 연일 최고 단계인 ‘불쾌’를 기록 중인데요. 대구는 7월에 모기가 크게 줄었지만 9월에 모기 활동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모기 출몰은 11월 말까지 이어졌죠.

“가을 모기는 더 독하다”는 속설은 오래전부터 내려왔습니다. 산란을 앞둔 암컷이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더 집요하게 피를 빨고, 그만큼 물린 자리가 오래 가렵다는 건데요.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뚜렷한 근거가 없는 말이죠. 계절에 따라 모기 침의 성분이 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름 내내 모기에 조금씩 물려 면역 반응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가을에 다시 물리면 가려움과 붓기가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건데요. 게다가 폭염과 폭우가 잦아들며 한꺼번에 불어난 개체 수가 체감 피해를 키운 거죠. 결국 속설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셈입니다.

이뿐만이 아닌데요. 가을 모기가 기승하면서 모기를 둘러싼 다양한 속설도 다시 회자되고 있죠. 먼저 ‘술 마시면 모기 밥 된다?’는 건데요. 과학은 이 속설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연구팀은 9일 맥주를 마신 참가자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1.35배 더 잘 물린다고 발표했는데요. 술이 체온을 높이고 땀 분비를 늘려 모기가 좋아하는 신호를 강화한 탓입니다. 이동규 고신대 교수도 지난해 라디오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술을 마시면 대사물질이 더 많이 분비돼 모기가 냄새를 따라온다”고 설명한 바 있죠.
이어 모기가 임신부는 좋아한다는 속설도 사실에 가깝습니다. 임신부는 체온이 평소보다 조금 높고 대사활동이 활발한데요. 더 많은 이산화탄소와 체취가 배출돼 모기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과거 일본 연구진의 연구 결과라고 알려진 O형 혈액형이 모기의 최애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O형 참가자가 A형보다 두 배가량 더 자주 물린다는 결과를 내놓았죠. 하지만 이 교수는 혈액형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다만 O형 중 활동량이 많은 사람은 땀을 많이 흘려 모기가 더 잘 달라붙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죠.

이 외에도 달콤한 피를 좋아한다거나 불빛에 끌려온다거나 빈혈에 걸린다는 속설이 있는데요. 모기는 혈당을 구별할 수 없어서 이산화탄소, 땀 속 젖산, 체온 같은 신호에 반응하는데요. 운동 직후 땀이 난 사람에게 모기가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달콤하다는 피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또 불빛에 끌려온다는 것 또한 형광등 주변에서 모기를 본 경험 때문에 생긴 오해이며 모기 한 마리가 빠는 피는 0.001~0.01ml에 불과해 수천 마리에게 동시에 물리지 않는 이상 빈혈은 불가능하죠.
이렇게 가을 모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모기 기피제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모기 기피제는 성분과 농도에 따라 사용 가능한 연령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죠. 잘못된 사용은 피부 트러블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불러올 수 있어 구매 전 반드시 성분과 의약외품 표기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기피제의 대표 성분으로는 디에틸톨루아미드(DEET), 이카리딘, 에틸부틸아세틸아미노프로피오네이트(IR3535), 파라멘탄-3,8-디올(PMD) 등이 있는데요. 이 가운데 DEET는 농도에 따라 사용 연령이 달라지죠. 모기의 후각을 혼란시켜 사람을 찾지 못하게 하는데, 효과는 강력하지만 농도가 높으면 피부 자극 우려가 있는 성분인데요. 10% 이하는 생후 6개월 이상부터, 10~30% 제품은 12세 이상부터 쓸 수 있습니다. 이카리딘과 IR3535는 생후 6개월 미만 영아에게는 권장되지 않고 PMD는 4세 이상부터 사용할 수 있죠.
올바른 사용법도 중요합니다. 피부나 옷 위에 얇게 바르고, 얼굴은 손에 덜어 발라야 하는데요. 눈·입 주위나 상처, 속옷이 닿는 부위에는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죠. 또 분사형 제품은 밀폐된 공간에서 쓰지 말고 외출 후에는 반드시 피부를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모기는 가려움만 남기지 않는데요. 일본뇌염,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감염병의 주요 매개체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 쓰쓰가무시증, 말라리아 등 주요 전염병 발생률은 평균 4.27% 증가합니다. 가축에게는 럼피스킨병 같은 전염병을 퍼뜨려 농가에도 위협이 되죠.

질병관리청은 6월 ‘감염병 매개체 감시·방제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며 권역별 감시 거점을 확대했는데요. 기후변화로 모기 활동 시기가 점점 길어지고 여름 해충이 아닌 ‘사계절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 모기가 더 독하다는 건 속설에 불과하지만 체감 피해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데요. 술과 임신부, 혈액형을 둘러싼 속설들처럼 모기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건 대응이죠. 기후변화 시대, 모기는 더는 여름의 불청객이 아닌데요. 이제는 사계절 내내 경계태세를 세워야 할 위험 요소, 진짜 독한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