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수요·B2B·적지 다핵화…R&D는 기업 주도형 규모화 필요

국제 곡물·기후 리스크가 상시화하면서 정부의 성수품 비축·할인 같은 단기 처방만으로는 ‘푸드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내 재배 편중을 푸는 ‘재배 적지(適地) 재발굴’과 맞춤 품종 개발, 해외 수입선 다변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또한 국내 기업의 실물조달 역량 강화는 물론, 품목·규모·운용 등 정부 비축의 정교화, 가정용을 넘어 가공·외식(B2B) 원재료까지 관리 범위 확대를 묶은 포트폴리오형 대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김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가격 변동의 1차 원인으로 기상 불확실성을 짚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기상이 너무 불순하다”라며 불가항력 요인이 큰 만큼 국내 공급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산지 편중을 풀기 위해 적지를 지속해서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배추처럼 특정 지역에 장기간 집중된 재배로 토질 악화가 누적되기 때문에 전국 단위 ‘적지 지도’와 맞춤 품종 개발·보급을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조달과 산업 전략 측면에서는 국내 곡물기업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적 곡물 수입국임에도 국내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이나 롯데 등 국내 곡물 기업도 글로벌 곡물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이런 기업들을 글로벌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장기 거버넌스에 대해 "미국이나 일본은 식량 안보를 국가 전략으로 격상했지만 한국은 정권 교체 때마다 우선순위가 흔들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참을성 있게 밀어줘야 한다. 일본이 50년, 60년 이상 지원해 큰 기업을 만들었다"라며 "정권과 무관한 중장기 계획과 재정투입, 민간의 인내형 투자를 뒷받침할 정책 일관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정부의 역할에 대해 곡물터미널·저장·선적 등 실물조달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대외 의존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곡물 메이저 기업과의 고정 장기계약이 만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메이저 기업들하고 장기 계약을 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오히려 그것보다는 수입선 다변화가 더 우선이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북·남반구를 아우르는 조달 포트폴리오로 지역 리스크 분산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푸드플레이션의 성격에 대해서도 관점을 분명히 했다. 채소·과일은 결핍보다는 가격 급등락 관리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주식인 쌀은 자급률이 거의 100%”라며 "푸드플레이션은 과채류나 가공식품 등 주식이 아닌 품목의 가격이 급등해서 나오는 상황으로 식량안보가 아니라 물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물가 대응과 관련해서는 비축 물량 확대를 주문했다. 김 교수는 "배와 감귤 같은 과일도 체감 물가 관리 차원으로 보면 비축 대상 품목에 포함하는 등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라며 "이를 통해 방출 시점과 물량, 지역별 타깃팅을 데이터로 정교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그는 체감 물가의 핵심 경로인 가공·외식(B2B) 원재료 관리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B2B용 농산물 관리도 좀 더 늘릴 필요는 있다”며 “공급망 관리를 좀 더 신경 쓴다면 소비자들 체감 물가는 좀 더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선 도매 위주의 수급관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라며 "B2B 원가 안정 패키지를 정책 범위에 편입해야 가격 전이가 늦춰진다"고 강조했다.
공급관리뿐만 아니라 수요관리가 중요하다는 입장도 내놨다. 김 교수는 "주식이 아닌 농축산물의 경우 가격이 비싸면 안 먹고 버틸 수 있다"라며 "공급 쪽에서의 물가 관리는 한계가 있지만 수요쪽에서도 같이 움직이면 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에 정부가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김장철 배추 출하 시기가 늦어져 배추값이 급등했을 당시 정부가 김장철 배추 수확 시기까지 김장을 늦게 준비하자는 '김장 늦게 담그기' 운동이 큰 효과를 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 교수는 "일정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오른 곳에 대한 소비는 좀 줄이고 대체 품목을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