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모한 한국이 글로벌 보건 개선에 지속해서 기여해주길 바랍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은 달라진 K바이오의 위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의 기술과 역량을 활용해 글로벌 헬스 리더십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해달란 메시지가 담겨 있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보건 격차 해소에 주력하는 게이츠재단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수익성을 이유로 다국적 제약사들이 외면하는 저소득국가 질병의 문제 해결을 위해 게이츠재단은 국내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협력은 백신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장티푸스와 소아장염 등 다양한 백신 개발 파트너십에 이어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는 백신 과제까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앞서 코로나19 백신 상용화로 게이츠재단과의 성공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LG화학은 소아마비 백신에 이어 6가 혼합백신 개발을 지원받았다. 영유아에게 치사율이 높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 간염, 뇌수막염, 소아마비의 6개 질병을 동시에 예방하는 백신이다. 유니세프를 통해 저소득국가에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공급하는 유바이오로직스는 게이츠재단의 지원을 통해 생산 설비를 확층했으며, 아프리카 말리에서 수막구균 5가 접합백신의 임상도 진행 중이다.
협력 범위는 인공지능(AI) 진단 등 다양한 영역까지 확장됐다. 온디바이스 AI 기반 진단 플랫폼 ‘마이랩’을 개발한 노을은 AI 기술로 저소득국가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보완할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의 영향력은 수치상으로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은 39억8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 규모의 한국산 의약품을 수입했다. 전년 대비 51.9% 늘어난 것으로, 이 가운데 바이오의약품이 94.2%를 차지했다. 국산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내 확산과 미국 제약사들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수요 증가에 힘입은 결과다.
의약품은 미국이 수입하는 품목 중 5번째로 규모가 큰 품목이다. 미국에게 한국은 의약품 수출입 상위국은 아니지만, 해마다 무역수지 적자를 내는 만큼 눈여겨보는 나라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약품 분야에서도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올해 7월 한미 통상협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언급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협의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관세 리스크를 해소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수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보유한 셀트리온은 미국에 원료의약품 생산시설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인수를 추진,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공장 실사에 들어갔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영토인 푸에르트리코에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생산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