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단계적 퇴직·부분연금 제도로 은퇴 유연화
美도 75세 경제활동 참여 늘어
고령층, AI 시대 ‘경험’ 무기 될 수 있어

전 세계가 고령화 물결을 맞으면서 ‘생산가능인구’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15~64세로 한정하던 공식은 사실상 효력을 잃고, 65세 이후에도 일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뉴노멀’로 자리 잡는 분위기라고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 정년 연장, 부분연금, 파셜 연금제도(가입기간이 기준에 못 미쳐도 납부한 만큼 비례해서 연금을 주는 방식) 등 다양한 제도가 확산하며 70세 이상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가 예외적 현상이 아닌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이미 실험대 위에 올라 있다. 도요타는 정년을 60세로 유지하면서도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통해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최대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메이지야스다생명은 경험이 풍부한 인력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65세인 정년을 70세로 인상할 계획이다. 스낵업체 칼비는 지난해 4월 개발, 생산, 법무 등 분야에서 높은 기술을 갖춘 직원들에 대해 고용의 연령 상한을 없애는 제도를 도입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아예 정년제를 폐지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2021년 시행된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을 통해 기업에 근로자가 70세까지 고용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 의무(위반 시 제재는 없음)’를 부여했다. 인구 감소와 인력난이 맞물리면서, ‘일할 수 있는 한 계속 일한다’는 문화가 제도권에 스며드는 중이다.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은퇴를 유연하게 만드는 제도가 확립됐다. 독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계적 퇴직 프로그램 ‘고령단시간근로법(ATZ)’이 대표적이다. 55세 이상의 근로자들은 퇴직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으며, 급여와 고용주가 내는 국가 연금 시스템에서 보상금을 지급받는다. 1992년 설립된 독일의 단계적 퇴직 프로그램 ‘부분연금(Teilrente )’은 63세 이상의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줄이면서 동시에 국가 연금 시스템의 부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노인 근로는 더는 일본과 유럽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도 젊은 직원이 그만두거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이를 채우고자 노년층 근로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7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0년 8.9%에서 2030년 11.7%로 높아질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령 근로자들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으로 내다봤다. 50세 이상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인 레스트레스의 스튜어트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고령 근로자들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풍부한 인생 경험”이라며 “행정 업무의 많은 부분은 AI로 대체될 수 있지만 감정적 교감은 쉽지 않다. 사람 대 사람의 연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다루는 역량 등 인공지능이 아닌 ‘진짜 지능’은 고령 근로자들이 특히 많이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은 인터넷의 등장 같은 기술 혁신을 이미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예측 불가능한 변화 양상에 익숙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