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개편안 충격에 ‘검은 금요일’
박스권 갇힌 코스피…서학개미는 美 증시로

이달 11일,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코스피는 희비가 엇갈렸다. 취임 초기 개혁 기대감을 등에 업고 가파른 랠리를 펼치며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세제 개편 실망과 대외 불확실성이 겹치며 두 달 가까이 3100~3200선에 갇혀 있다. ‘코스피 5000 시대’ 약속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6월 4일부터 이달 5일까지 코스피는 16% 상승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한국거래소를 찾아 개혁 의지를 밝힌 뒤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소각 확대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에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가 몰리면서 지수는 두 달 만에 3000선을 넘어 3200선까지 돌파했다. 7월 30일에는 종가 3254.47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음 날 장중 한때 3288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3316.08)에 60포인트 남짓 차이로 다가섰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세제 개편이었다. 정부가 7월 31일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추고, 배당소득에 최고 35% 분리과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장은 개혁 후퇴로 받아들였다. 다음 날 코스피는 3.88% 급락하며 3119.41에 마감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상승분이 단숨에 무너진 이날은 ‘검은 금요일’로 기록됐다.
이후 지수는 3100선 초반까지 밀렸다가 간헐적으로 반등을 시도했다. 지난달 4일에는 3200선을 회복했지만 상승 탄력은 약했다. 하루 변동성이 1% 이내에 머물며 ‘박스피’ 장세가 굳어졌다.
국내 증시가 주춤하는 사이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증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5일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결제액은 9억9000만 달러(약 1조3796억 원)에 달했다. 불과 닷새 만에 7월 및 8월 각 월간 순매수 규모를 뛰어넘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해 환손실 부담이 커졌음에도 S&P500과 나스닥 등 주요 지수가 줄줄이 신기록을 쓰자 미국 증시에 베팅하는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전망은 엇갈린다. 정부는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를 검토했지만, 당정 조율 과정에서 표류 중이다. 연말마다 반복되는 ‘대주주 회피 매도’ 리스크도 여전하다. 이성훈·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세제 개편 불확실성이 국내 고유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포함된 상법 개정안도 시장 부담 요인이다. 정부는 주주환원 확대를 내세우지만,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약화와 재무 제약을 우려한다.
다만, 기대감도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가격 조정보다는 기간 조정 국면에 있다”며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후 금리 인하와 중국 경기 부양책이 확인되면 연내 3300선 돌파 등 9월 말~10월 초에 고점 경신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도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선언하며 증시 부양 의지를 드러낸 만큼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