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 비용 상승·수익성 저하·공급망 재편에 보수적 자금운용 계획

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6월 기준 예금취급기관의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47조403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증가하는데 그친 것으로 증가율은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시설자금은 기업 운영의 토대가 되는 고정시설에 투자하는 돈이다. 주로 토지 매입, 사업장 건축, 기계·장비 구입 등에 사용된다. 대출 증가율이 축소됐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활동이 위축됐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은 차입 비용 상승과 수익성 저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삼중고 속에서 투자 계획을 보수적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임금 지불, 원료 구입 등에 쓰이는 운전자금(6월 기준)은 1697조3498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4.5% 늘어난 규모로 올해 초 이후 꾸준히 4%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자금은 빌리되 당장 급하지 않은 설비 투자는 미루는 이른바 '불황형 대출'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위축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더 두드러진다. IBK기업은행의 '중소기업 금융실태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5억 원을 초과하는 4500개 중소기업은 '올해 자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90.6%가 구매대금 지급에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인건비 지급(37.8%)과 대출원리금상환(4.7%)이 뒤를 이었다.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4.1%)와 연구개발(2.2%)은 후순위였다. 내수 부진과 평균 가동률 하락, 보수적 자금 운용 등의 복합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규제 개혁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업들이 생존 비용 충당에 몰두하면서 성장 기반을 다질 여력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작아지면 중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확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정책)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