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둥지를 떠난 새처럼

입력 2025-08-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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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아…”

야심한 밤, 옆방에서 깊은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온다. 군 입대를 한 달여 앞둔 아들의 방 쪽에서.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왔던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슬픈 공감의 한숨을 섞는다.

“여자 친구가 기다려 준다고는 하는데… 왠지…”

“제대하고 복학하면 친구들은 다 떠나고… 학교생활이 외롭겠죠?”

어릴 적부터 낯선 곳을 힘들어하고 분리불안이 있던 아이. 전혀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불안,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야만 한다는 불만. 가끔은 징병제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토하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과 송별회라며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도 잦았다.

명색이 정신과 의사인데, 정작 잠 못 이루는 밤 뒤척이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느덧, 입대날 아침. 새벽의 고요를 깨고 시동을 걸었다. 논산 훈련소를 향해 떠나며, 우리 내외와 아들 사이엔 긴 침묵만 흘렀다. 훈련소에 도착하니, 예전과 달리 가족과 친구도 연병장까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군대 많이 좋아졌네… 나 때는…” 하다, 굳은 아들의 표정에 말을 삼켰다.

잠시 후 작별 인사를 하고 운동장으로 집결하라는 안내가 흘렀다. 여기저기서 가족과 그들의 어린 병사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 보였다. 말없이 담담해 보이던 우리 아들의 두 눈에서도, 땀처럼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동안 셋이 꼭 끌어안았다가, 교관의 호령에 포옹을 풀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떼던 아들이 한 번 뒤돌아보며 눈물 젖은 얼굴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마치 이산가족이 된 듯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집을 완전히 떠나는 아이. 아직도 철없고 유약하기만 한 녀석인데. 집에는 고3인 막내딸만 남아, 더 휑하고 쓸쓸했다.

어느덧 5주가 흘러 수료식 날.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나는 잠시 알아보지 못했다. 검은 베레모의 청년 하나가, 아이의 이름을 달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말을 잃은 채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잠시 외출이 허용되어 밖으로 나와 그가 그토록 먹고 싶다던 삼겹살을 구웠다.

“어, 강원도네.” 식사 중 도착한 문자로 근무지를 확인한 그는, 잠깐 실망의 기색을 보였을 뿐 묵묵히 받아들였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과 투덜거림이 앞섰을 텐데, 눈앞의 청년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남은 일을 정리하던 중 전화가 왔다.

“아빠,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응… 병원 일로 조금 걱정이 있어서.”

“이제 나이도 있는데 일 좀 줄이고 건강 챙기세요. 저는 여기서 잘 지내요.”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나의 철부지 아이가 아니었다. 어느새 나를 다독이는 큰형 같았다. 보이지 않을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Never give up, Dad. Cheer up!”

사춘기 때 내가 그에게 자주 보내던 말이었다. 진료실 창 너머 하늘이, 불현듯 더 높고 푸르게 느껴졌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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