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거래 확대 방침…韓기업 영향 받을라
삼성 등 한미 정상회담서 대미 추가 투자 여부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89억 달러(약 12조 원) 구명줄을 던졌지만, 인텔의 재도약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는 평가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주 자국 내 반도체 제조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텔에 89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의 9.9%를 확보했다. 이에 기존 최대 주주였던 블랙록(8.92%)을 제치고 단숨에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핵심인 ‘기술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 역시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고 2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기업에 개입한 사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투자는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을 구제하거나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실제로 인텔의 자기자본비율은 50%에 달해 재무적 위기 상황은 아니다. 미국 정부의 기업 구제에 정통한 마르셀 카한 뉴욕대 교수도 “이번 투자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출자는 그보다는 전략적 산업 보호에 가깝다. 인텔은 미국 내에서 로직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유일한 대기업으로, 미국 반도체 전략의 핵심이다. 댄 허친슨 테크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인텔이 없다면 미국은 자국산 첨단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투자가 인텔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텔은 경쟁사인 대만 TSMC에 비해 첨단 반도체 제조는 물론 고객지원 노하우 측면에서도 뒤처져 있다. 수요에 비해 투자 규모가 과도해지면서 오하이오주에서는 팹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 TSMC와 공동 운영하는 협력 방안까지 거론됐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9월 분사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자회사도 유력한 자금 제공자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이다.

립부 탄 인텔 CEO는 4월 “파운드리 사업에 전념하겠다”며 자체적인 재건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투자로 인텔은 미국 정부의 의향을 전보다 더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향후 경영난이 지속되면 미국 정부 주도로 사업 재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가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국가 자본주의화’ 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러 바우얼리 댄즈먼 인디애나대 교수는 “정부가 일단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 기업은 더는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미국 정부가 인텔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지분 확보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인텔 지분 확보 소식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지분 확보를 검토하고 있지만 자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대기업은 예외로 둘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에 삼성 등이 25일(현지시간)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미 추가 투자를 발표할지 주목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는 미국 정부의 지분 확보 시도에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TSMC는 인텔과 비슷한 시도를 트럼프 정부가 하면 아예 보조금을 반납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