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경영직설] ‘한국형 인사청탁’ 줄지 않는 까닭

입력 2025-08-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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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지배구조 취약할수록 외풍 휩쓸려
상부상조 생각에 죄의식 별로 없어
‘권력형 청탁’ 새 정부는 피해갈까

전임 대통령의 부인이 기업 회장으로부터 사위의 인사청탁 대가로 6000만 원대 목걸이를 선물받은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청탁 덕분인지는 몰라도 검사 출신 사위는 차관급인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사건 전말을 들여다보면 한편의 K드라마와 같다. 등장인물의 배역은 대통령, 영부인, 국무총리, 총리 비서실장, 기업 회장, 검사 등으로 호화찬란하다. 기업 회장에게 명품 목걸이를 선물받은 영부인이 그 회장의 사위를 남편인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대통령은 이 청탁을 국무총리에게 전달해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스토리는 드라마보다도 극적이다.

거액의 선물과 고위 공직을 거래하는 매관매직에 해당하는 정도의 불법적 인사청탁은 드물다. 하지만, 관습적 인사청탁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인사청탁이 횡행한다. 높은 윤리성이 요구되는 공공기관에 인사청탁이 통하는 이유는 지배구조가 취약해 외풍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수장이 대거 바뀐다. 이에 따라 임직원의 인사도 요동을 치고 그 틈을 타서 청탁이 비집고 들어온다.

공공기관에서 인사권을 맡은 이들의 경험에 따르면 신입 사원 채용에서 승진·전보와 임원 선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인사청탁이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국회 등의 정치권 청탁이 많다고 한다. 선거에서 유권자 지지를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을 받아와 전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학연, 지연, 혈연의 여러 인맥을 타고 전방위로 인사청탁이 들어온다.

사람들이 이권청탁은 법에 걸린다고 간주해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인사청탁은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고 생각해 관대하다. 주변의 누구 아는 사람이 인사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상부상조의 한국적 미덕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청탁에 나서기도 한다. 인사청탁의 혜택을 받는 당사자도 자기 자리가 걸린 문제라 청탁을 요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인사에서 공정성은 주관적이다. 인사 대상자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면 공정한 것이고 불리하면 불공정한 것이다. 능력과 성과있는 소수를 선별하여 보상하는 인사제도에서 다수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중에 청탁을 통해 인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직원이 나온다. 이런 관계가 맞물려 인사청탁이 만연하는 것이다.

인사청탁이 조직에 미치는 폐해는 매우 크다. 인사는 민감한 사항이라 청탁이 통하면 직원들이 금방 알아차린다.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 직원이 청탁을 통해 발탁되는 순간 모든 직원이 불안해진다. 청탁을 안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는 서로 인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청탁을 넣기 바쁘다. 좋은 자리 가려는 출세형 청탁보다 불이익당하지 않으려는 생존형 청탁이 더 치열하다. 외부 청탁에 의해 인사가 좌우되는 기관에서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인맥 찾아 줄서기 바빠진다. 그럼 직장은 온통 정치판이 되고 직원들 간의 단합과 결속은 저 멀리 물 건너간다. 인사에서 누락되거나 승진이 안 된 직원은 본인의 능력을 탓하기보다 연줄 없음을 한탄한다.

인사권자 입장에서 청탁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인사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뇌물이나 이권은 나만 청렴해 거절하면 된다. 그러나 권력자의 청탁을 무시하면 나중에 개인이나 기관에 불이익이 올 수 있다. 인맥을 통한 청탁은 인간관계가 있어 안 들어 주면 매정하고 야속하다는 욕을 먹는다. 이해나 인간 관계를 포기할 정도의 각오를 갖지 않으면 청탁에 버티기 쉽지 않다. 인사청탁하는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언한 기관장의 경우 그 원칙을 지키려다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권력자의 청탁을 통해 자리를 차고 들어온 기관장은 인사청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다음에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 인사청탁을 능동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권력형 인사청탁이 성행하면 공조직이 사조직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부인이 공적 의식도 없이 뇌물을 받고 고위직 자리를 알선했다니 개탄스럽다. 아니 그런 것을 받아 이행한 대통령은 더욱 한심스럽다. 그런데 그게 과거에만 국한된 사건일까? 새 정부에서도 공무원의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장에 이상한 분이 와 구설에 올라 있다. 권력자의 과거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분들도 한자리씩 차지했다고 한다. 다들 유능한 분들이겠지만 혹시나 이권에 의한 인사청탁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데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인사청탁이 사라질는지 갑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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