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현재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18%로 1930년 이후 가장 높은 상태여서 관세발 물가상승이나 세계경기 위축이 전혀 없을 거라 보긴 또 어렵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지연되고 있을 뿐 완전 소멸된 게 아닌 듯한데, 이는 7월까지는 평균 관세율이 10%(중국은 30%) 미만이었고 기업들이 재고를 미리 많이 쌓아 뒀거나 비용을 최대한 자체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가 부과됐고 여기에 철강, 알루미늄 등 고율의 품목관세도 추가 적용되고 있다. 비축해 둔 재고도 거의 소진됐고 기업들의 제살깎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물가가 당장 마구 튀어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경기가 자연스레 식고 있는 중이고 혁신기술 덕에 생산성도 좋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 2분기 임금 상승률은 3.9%에 달했지만 노동비용은 1.6% 오르는 데 그쳤는데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생산성이 연율 2.4% 높아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기둔화와 생산성 개선이 관세발 물가부담을 녹이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 또한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다음 세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놓고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가장 나쁜 경우인데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장금리가 오르고 물가급등에 경기는 나빠지는 시나리오다. 경기부진의 근본 이유가 관세로 인한 물가불안인데 금리를 낮춰 이에 대응하고 시장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정책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막상 금리인하의 약효도 시원치 않고 경기에 비해 시장금리가 높아 결국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는 그림이다. 여기서 핵심은 시장금리의 상승 여부인데 원래 채권 이자율은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고 시장에서 집단지성에 의해 형성되기에 더욱 그렇다. 관세수입에 따른 유동성 증가와 때마침 시행된 트럼프의 새 예산안(OBBBA) 모두 장기금리에 부담을 줄 경우 이 확률은 높아진다.
둘째는 경기나 기업이익, 금융환경 모두 현재 상황이 이어지는 경우다. 고율의 관세가 물가에 부담을 주지만 연준의 금리인하가 일단 이를 중화하는 케이스다. 물가와 금리상승 우려가 투자심리를 계속 묵직하게 누르지만 경기와 증시가 바로 꺾이지 않는 이유는 수입 관세의 피해는 적고 대외수출은 오히려 늘어나는 빅테크 기업들의 선전 때문일 것이다. 산업 간 양극화는 계속되고 주가의 쏠림이 심해 나중에 더 큰 후유증을 불러올 수는 있지만 일단 올해까지는 시간을 버는 그림이다.
셋째는 연준이 예상보다 금리를 많이 내려 관세 부담이 금리인하로 보전되고도 남는 가장 좋은 경우다. 금리인하 약발이 먹히면서 시장금리도 따라 내려가는 최선의 상황인데 미국경기가 완만하게 약해지고 국채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증시는 우선 오는 9월 금리인하를 반기고 약한 물가와 정체된 시장금리에 힘입어 강세를 이어갈 수 있다. 이른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기’에 금리인하라는 보너스까지 거머 쥔 증시는 한결 몸이 가벼워질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과 투자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시장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