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삼성·인텔에 기회 열리는 파운드리 시장
고객사, 공급난에 TSMC 대신 대안 찾기 움직임
GAA 공정 등 신기술 전환 국면, 판도 변화 촉발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온 대만 TSMC조차 최선단 공정에서 생산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부 고객사들이 다른 파운드리를 찾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공급 병목이 삼성전자와 인텔 등 후발 주자들에게 반전의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맺은 자율주행 차량용 AI6 칩 공급 계약과 관련해 2027년 하반기부터 본격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2028년 이후에는 연간 3~4조 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테슬라는 AI4 칩은 삼성전자, AI5 칩은 파운드리 시장 1위인 TSMC에 위탁해왔다. 테슬라가 AI6 생산을 위해 삼성전자를 다시 선택한 것은 TSMC 의존도가 높아진 시장에서 후발 주자들에게도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TSMC가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이 삼성전자와 인텔 등 경쟁사에 배정되는 추세라고 분석한다. AI 시대에 빅테크 기업들이 끊임없이 TSMC를 찾지만, 높은 가격에도 생산능력(캐파)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시장 구조상 AI 반도체 수요를 TSMC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캐파가 부족하다”며 “그래픽처리장치(GPU) 가속기 분야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TSMC의 독점 체제가 유지되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반도체 글로벌 지형 변화 전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도 이러한 흐름을 한국 반도체 기업에 기회 요인으로 봤다. 보고서는 “삼성전자가 3nm(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나노와 2나노 공정으로 제작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GPU 수주를 따내지 못하더라도 수요사들의 물량이 제한되면 삼성전자와 인텔 파운드리 채택 가능성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연산 수요가 폭증하면서 GPU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NPU나 주문형반도체(ASIC) 등 맞춤형 AI 가속기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GPU 중심의 구조가 점차 분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특정 기업과 파운드리에 집중됐던 수요를 분산시키고, 삼성전자와 인텔 등 후발 주자들에게도 기회를 넓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TSMC 대비 삼성전자와 인텔의 기술력이 뒤처져 간극을 좁히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이 적용되며 모두 비슷한 출발선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며 이 기술 역시 삼성전자가 다른 경쟁사들보다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공정을 대체할 차세대 기술로, 전력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AI 칩 수요와 직결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먼저 기술 개발을 선점했다는 사실은 향후 초격차 기술 경쟁에서 의미 있는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인텔은 최근 삼성전자만큼 파운드리 수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기업 지원 정책과 맞물려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얼마 전 TSMC에 관세 인하 조건으로 인텔 지분 인수를 요청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인텔 지분을 직접 인수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빅테크 기업들에게 인텔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