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여름나기

입력 2025-08-0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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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던 여름이 가고 있다. 나는 여름을 즐기지만 올여름엔 그러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여름 내내 자기 패를 다 써버린 사람처럼 곤곤했다. 연일 폭염경보가 뜨고 온열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일상의 기쁨 중 하나인 산책은 새벽에만 가능했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새벽 4시에서 동틀 무렵까지 걸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몸은 땀이 젖었다. 돌아와 땀을 씻은 뒤 두어 시간은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썼다.

한낮엔 일사광이 촛농처럼 떨어진다. 나는 동네 카페에서 신간 소설을 읽다가 돌아온다. 이윽고 해가 기울고 저녁이 다가온다. 매서운 폭염에 시들시들 하던 녹색 초목들은 기운을 되찾고, 매미들도 정신 차린 듯 맹렬하게 울어대는 여름 저녁, 황혼빛에 감싸인 여름 저녁은 정말 아름답다. 그 짧은 찰나의 행복에 빠져드는 건 긍정과 낙관주의라는 덕목 탓일 텐데, 나는 그런 천부의 자질을 가진 이들을 한없이 부러워한다. 늘 웃는 이들에겐 명랑함이라는 내면의 부(富)가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여름에도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쉽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찬 젊은이들일 테다. 폭염을 겁내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행복을 가차없이 누리는 청춘에겐 사랑에 빠지고 쉽게 행복의 풍요를 거머쥐는 특권이 주어진 듯하다. 이들은 폭염의 여름마저 축제로 바꿔놓는다.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 해변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친다. 젊은이들은 계절이 주는 쾌락과 사랑과 열광에의 투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아무튼 여름은 불행에 인색하고 행복에 너그러운 자들, 그리고 경이로운 탄력과 회복력을 가진 젊은이들과 잘 어울린다. 촌음을 아껴가며 사랑을 하고, 도서관이건 생업 현장이건 어디서든지 미친 듯이 자기 일에 빠져드는 젊은이들은 무기력과 권태에 빠져 여름을 나는 이들에겐 외계인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세계와 한 몸이 되어버린 듯 자신에게 열중하는 젊은이들을 부러움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계절은 순환한다. 우리가 살 날은 영원하지 않다. 인생의 날들은 찰나인 듯 흘러간다. 어떤 이들은 찬합의 반찬을 이쑤시개로 헤적이듯 불행의 요인들을 들추며 근심에 빠진다. 그런 염세주의는 인생의 숭고함과 가능성에 대한 모독에 지나지 않는다. 오, 우리가 청춘에게서 부러워하고 배울 것은 행복에의 탐닉이다. 하루하루를 선물로 여기고, 계절과 여분의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여름이 무더위와 권태로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강원도 산 찰 옥수수를 쪄먹거나, 애호박을 채 썰어 끓인 바지락 칼국수를 먹을 때 돌연 행복해진다. 폭염에 삼켜진 듯 심신이 무력하던 내게 여름 과일은 생기를 준다. 잘 익은 복숭아나 탱탱한 피자두를 먹는 기쁨은 소박한 것이다. 수밀도를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즙이 입가로 흘러넘친다. 그 찰나 내 안의 피들이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나는 다만 몸과 마음을 다하여 행복에 전념한다.

입추 지나고 불멸의 폭염을 퍼붓던 여름도 돌아갈 채비를 서둔다. 지나간 여름은 우리 인생에 처음 맞는 여름이었다. 계절과 인생은 일회적인 것, 비유하자면 편도여행이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이 한 번 간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은 우리에게 왔던 이 여름과 전별할 때다! 먼 훗날 우리는 올여름의 폭염과 가족들과 방문한 장소들과 먹었던 과일을 추억하며 잠깐 애틋함에 잠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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