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게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북미와 유럽 일부 지역은 섭씨 45도를 넘는 폭염에 신음하고 있고,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평년의 3배에 달하는 폭우로 대규모 침수 피해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강도가 더 세진 느낌이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로 고통받는 건 인간만이 아니다. 지구 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영향을 받는다. 특히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 이 중에서도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식량 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고 심각하다. 예를 들어, 연일 이어지는 극심한 더위는 작물의 생육 기간을 짧게 만들어 결국 수확량을 크게 떨어뜨린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02년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밀, 쌀, 옥수수 같은 주요 곡물의 수확량이 3~7%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높은 기온은 작물의 생식 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열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꽃가루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거나, 수분이 어려워져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토마토나 고추처럼 고온에 민감한 작물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열매 수 자체가 줄어들거나, 품질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최근 온라인에 “토마토 1kg에 6000원을 넘었다”는 뉴스가 올라오는 것도 이런 연유다.
뿐만 아니라 단시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작물의 뿌리가 썩거나, 아예 논밭이 침수돼 수확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일도 아주 잦아졌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농업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지금처럼 기후 변화가 계속된다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기후 위기 앞에서, 과학자들은 다시 ‘흙’에 주목하고 있다. 흙이 단순히 작물이 자라는 곳을 넘어,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생태적 자원으로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요즘 과학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기후탄력성 토양(climate-resilient soil)’이다. 쉽게 말해, 날씨가 아무리 극단적으로 변해도 작물이 버틸 수 있고, 흙 스스로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토양을 뜻한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 속에서 우리의 식탁을 지키기 위해, ‘흙’이 다시 중요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양의 기후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접근법 중 하나는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는 ‘돌가루 뿌리기’다.2022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약 190t에 달하는 현무암 가루를 옥수수와 콩이 자라는 밭에 뿌리는 대규모 실험이 진행되었다. 돌가루를 뿌려서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약 1ha(약 3000평) 크기의 밭에서 4년 동안 최대 10t의 이산화탄소가 줄었고, 작물 수확량은 12~16%나 증가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현무암은 비나 이슬, 토양 속 수분과 만나면서 천천히 풍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마그네슘이나 칼슘 같은 미량 원소들이 토양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양이온은 토양의 산성을 낮추고 미생물의 활동을 도와 작물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더 큰 효과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 미네랄들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탄산염’이라는 형태로 탄소를 땅속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원래 자연 속에서도 아주 느리게 일어나지만, 우리가 미세하게 간섭함으로써 이 과정을 ‘가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지에 현무암 가루를 미리 뿌려 두면 빗물이나 이슬, 토양 수분과 반응해 수십 년 걸릴 일을 몇 년 안에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연구는 이미 영국, 캐나다,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어떤 지역에서는 현무암보다 반응 속도가 더 빠른 ‘울라스톤석(Wollastonite)’이라는 광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강화된 풍화 기술’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 이상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고,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용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뿌리는 작은 돌가루 한줌이 더운 여름을 식히고, 작물의 수확을 지키며, 미래 세대의 숨 쉴 공기까지 바꿔줄 수 있다면, 이제는 흙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의 가장 가까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