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반기에 급격히 위축됐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EC·스팩) 상장 시장이 하반기 들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상반기 스팩 상장이 세 건에 그치며 찬바람이 불었던 코스닥 시장에 지난달부터 여섯 건의 스팩 상장이 이어지면서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세 건(△KB제32호 △LS1호 △DB금융제14호)의 스팩이 주식시장에 신구 상장했다. 이달에도 추가로 3건(△하나35호 △교보18호 △삼성10호)의 스팩 상장이 예정됐다.
올해 상반기 스팩 상장은 직상장 선호 현상과 스팩 합병 이후 주가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며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3건이던 스팩 상장은 올해 8분의 1 수준인 3건(△유안타제17호 △한화플러스제5호 △KB제32호)으로 급감했다. 특히 NH29호, 유안타11호 등 다수 스팩이 수요예측 부진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하거나 일정을 연기하며 공모 규모가 급감했다.
스팩 부진은 IPO 시장 회복과 공모주 심사 강화에 따라 스팩 상장 매력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스팩 상장은 직상장과 달리 기관 수요예측이나 청약 등 일반 공모 과정을 거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스팩 상장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IPO 시장이 우호적으로 조성된 시점에 굳이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스팩 상장을 선택할 유인이 없다. 여기에 스팩 상장 후 주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투자 수요가 줄어든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스팩 시장 분위기가 개선될 기미를 보인다. 이미 하반기 상장이 확정된 스팩 건수가 상반기 수치를 넘어섰다. 여기에 삼익제약과 에이엘티, 애드포러스 등 실적과 성장성을 갖춘 알짜 기업들이 스팩과의 합병을 통한 상장을 준비하면서 스팩 상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스팩 합병을 앞두고 있는 기업은 심사 승인을 받은 앞선 세 기업을 비롯해 엔비알모션과 삼미금속, 지에프아이, 쎄미하우, 시아스 등이다. 이들은 거래소에 스팩과의 소멸합병 예비심사 청구서를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수요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것이란 예상도 스팩 시장의 반등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다. 종목별 차별화 장세가 이어지면서 공모가 변동 리스크를 줄이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사전에 공모가를 확정해 상장할 수 있는 스팩 상장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냉소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강화된 상장 심사 기조와 한계기업 퇴출 속도가 빨라진 시장 환경에서 스팩 상장이 과거처럼 활기를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상장폐지된 스팩이 20여 건에 달해 지난해 23건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커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스팩은 여전히 신속한 상장 수단으로 기업에 매력적이지만, 투자자로서는 합병 후 주가 변동성 등 리스크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면서 "하반기 재도약 조짐은 있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