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상 의뢰인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할 때,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온다. 비교적 젊거나 어린 자녀를 염려한 부모가 상담을 함께 오기도 하는데, 변호사 선임의 ‘키’는 주로 당사자가 아닌 지인이 쥔다. 나름대로 사람을 잘 본다는 지인의 승낙을 받아 약정서를 작성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사건을 진행하면서 시작된다. 사건 당사자보다 지인이 연락하는 횟수가 더 많다. 당사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지인들은 모든 내용과 사안을 파악하고자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지인들은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사건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을 자처한다. “이 아이가 이런 건 처음이에요” “정말 믿으셔요 돼요” 등 당사자의 신뢰성을 보강하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 진행에 미묘한 영향이 끼친다. 지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건에서는 되레 의뢰인이 자기 뜻을 온전히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의뢰인의 생각이 지인을 통해 왜곡되거나, 심지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대화가 지인에 의해 달라지는 사례도 있다.
변호사는 모호한 경계 위에서 조심스레 질문하고 듣는 수밖에 없다. 당사자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지인의 ‘과잉 개입’까지 조율해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담 초기에는 지인이 든든한 지원군처럼 느껴지지만, 점차 부담으로 변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재판정도 마찬가지다. 혼자 오는 사람들보다는 가족이나 지인이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공개된 재판의 경우에는 괜찮지만, 비공개 재판 내지는 조정절차에서도 함께 와서 앉아 주길 원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조정절차에서 목사, 스님이 함께 오는 장면이 빈번하다. 이들은 “OO 교회 목사입니다” “OO사 스님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사건 당사자가 말을 잘 못 하거나 불안해 하므로 함께 왔다며 앉아 있으려고 한다.
조정을 진행하는 판사는 신원을 확인하고 퇴실을 권유하지만, 당사자가 심리적 불안을 주장하기에 참관만 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는 입구 옆의 의자에 앉아 달싹거리는 입술을 참지 못한다.
이혼소송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많다. 변호사가 있는데도 아침 일찍부터 조정실 문 앞에서 묵주와 염주를 돌리는 부모들도 있다. 또 공개된 이혼소송에서는 한마디만 하면 안 되냐며 손을 들었다가 제지당하는 어른들도 많다.
이들은 아들‧딸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감정과 판단, 억울함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이혼이라는 민감한 절차가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기보다 오히려 더 깊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뒤엉키는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때로는 당사자가 부모의 감정에 휘둘려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설득은커녕 질문조차 쉽지 않은 장면들도 자주 목격된다.
이보라 변호사는 “법은 철저히 당사자 중심의 절차를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지인의 법정’이 되기 쉽다”며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이 얽히고,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 법의 중립성과 절차는 조금씩 흔들린다”고 말했다.



